jueves, 22 de agosto de 2013

마요한 신부님 인터뷰


어떤 계기가 되어 외방선교회에 들어가시게 되었나요?
  주일학교 시간 때 이 세상에 아직도 많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배워서 제가 나중에 선교사가 되어서 꼭 복음을 전하겠다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갈 생각을 갖게 되었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언제 한국에 처음 오셨으며, 신학생 신분으로 광주에서 보낸 추억이 있다면? 
   1977년 4월에 한국에 신학생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과달루페 대신학교에서 수련기를 마치고 한국에 유학을 신청했습니다. 한국말을 일년 반 공부한 후 광주 대건신대에 입학했습니다. 문화 차이, 언어 구사 부족등,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웠습니다만, 신학교 생활은 멕시코 신학교 생활과 비슷했고(기도,공부,작업,운동등) 그 당시에 많은 좋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답답할때면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왜 왔을까 생각할 때가 가끔 있었죠. 
  
사제 서품 이후 근무한 곳과 그곳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고흥, 자양동, 매곡동 금당, 망운 모두 잊혀지지 않는 선교지였습니다.

자양동성당 보좌신부(1982.4), 전남 고흥성당 주임신부(1983.6)로 도화, 과역공소에도 매주 주일미사 드렸습니다. 매곡동주임(1987)으로 있을 땐 많은 학생들이 있었고 성당건물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자양동 본당신부(1990.6)로 가서 보좌신부도 없이 혼자 사목을 하였는데 나중에는 빈센트회 수녀님들과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이 본당은 유치원부터 노인대학까지 있었으며, 구역, 반, 어른들과 청년 성가대 등 정말 다양한 액션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가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기도 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젊어서 그런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목회원들과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사목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 멕시코로 근무를 명 받으셨으며, 그곳에서 하신일은?
 20년 일한 한국을 떠나 1997년 멕시코 총본부의 메스콤 분야 담당으로 발령받았습니다. 4,5년이면 한국에 다시 오리라 여기고 떠났는데 12년이 걸렸습니다.

금당,망운성당에서 신자들과의 추억이 있으면 말씀 해주세요.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금당성을 맡게 되었습니다.(2009) 공동체도 젊고 신자들도 열심히 하였으며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떠날 때 정든 신자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지만 반면에 기뻤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많은 신부님들이 금당성당 공동체가 탄생하고 성장하도록 활동을 열심히 했으니까요.  망운은 큰 공동체는 아니지만 3개 공소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고, 130여명의 신자들과 바쁜 중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희 과달루페회는 그분들을 기억하며 금당성당과 마찬가지로 또 망운성당에서의 선교회 활동을 접을 것입니다. 망운성당에서 일을 끝내면 특수 사목을 공부해서 선교사로서 활동을 계속해야죠. 

유치원 어린이 와 같이 


하느님 미소를 닮은 마요한 신부님


이혜정 글로리아 수녀 (까리따스 본원)

  들판의 곡식과 여러 식물들이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영양분을 받아 하루하루 몰라보게 풍성히 살찌우는 햇볕 따스한 7월에, 문득 태양의 밝은 모습을 닮은 신부님이 내 머리를 스쳐간다.

“수녀님! 지금 밖에 비가 오고 있어요. 사제관에 올라오세요. 맛있는 커피 준비했어요” 순천 금당성당에서 신부님 사목 활동을 도와드리며 생활을 했는데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지금도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신부님을 생각하면 본당에서 항상 교우들과 우리 수녀들을 사랑 가득한 미소와 부드러운 존대 말씨로 맞이하는 모습과 교우들에게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열린 마음으로 늘 대해 주신 모습,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어려운 교우들을 방문하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며 기도하시는 모습이 작은 아기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큰 매력중의 하나는 유모어입니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시며 나오는 잠깐잠깐의 유모어는 주변의 모든 신자들을 까르르 웃게 하고, 행복바이러스가 넘치게 합니다. 
전례의 중심인 미사강론은 늘 깊이 있게 준비하셔서 금당신자들을 영적으로 살찌워주시고, 주일학교 아이들을 “멋진 왕자님”과 “예쁜 공주님”이라고 표현하며 모두를 친구처럼 맞이해주시며, 사탕과 쵸코렛이 가득담긴 신부님 주머니는 항상 아이들이 몰려오게 하고 사랑과 기도가 담긴 작은 이벤트들이 지금도 저에게 진한 라일락향기처럼 생생하게 밀려옵니다.  

 요즘 산책길에 운동장을 바라보면 지난날, 금당성당 앞 공터에서 매주일 오후 신부님과 교우들, 그리고 수녀들이 함께 족구를 하고 음식을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신부님이 사진을 찍어 주시면 제일 멋진 포즈를 취하면서 행복해했던 신자들과 아이들, 주일학교 교사들과 윷놀이를 하며 정성스레 요리해 주셨던 모습들

신부님의 삶을 바라보면서 말씀과 삶이 따로 떨어져있지 않고 항상! 먼저! 몸으로 모범적으로 살으셨던 신부님은 지금도 저에게는 작은 스승이요, 나침반역할을 해 주십니다. 
  성체앞에서 고요히 기도하시는 신부님의 뒷모습은 많은 신자들을 품어 안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이고 기도의 원천이 되어주셨습니다. 
 처음과 끝이 항상 같으셨던 멋진 신부님..

  이 시대에 많은 젊은 사제들에게 좋은 표양이 되어주시고, 항상 열정적으로 사목하시는 신부님을 위해 멀리서 기도로써 파이팅입니다.   신부님!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영적 육적으로 건강하시길....

노인대학 어르신들과 생일축하식 
대세 드리는 모습
새신자들과 기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