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ábado, 23 de noviembre de 2013

“기쁜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려고 합니다.”

양진홍 제랄도(Gerardo Cabral Parra) 신부





후원회원들에게 드리는 말씀…… 

과달루페 성모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성모님의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면서생명과 화해의 성모님을 많이 사랑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에서 하고 있는 선교활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주시고 격려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후원회원들 중에는 평신도 선교사로써 활동해 주시는 분들이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본당에 가서 후원회원들을 모집하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과지속적인활동을 부탁드리며 격려의 말씀드립니다.
열성적으로 충실하게 봉사하시는 모습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고앞으로도 모든회원들이 함께 기도하고 친교를 나누는 후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랄도 신부


                                                      INTERVIEW

신부님사제의 길을 선택한 동기가 궁금합니다.

첫영성체  교리교사 선생님께서 “네가 커서 무엇이 되면 좋은지 성체를 받아 모실 예수님께 여쭈어 보면 알려 주신다 하셨습니다 말씀을 믿고  번이나 물어 보았으나 예수님은 대답이 없으셨습니다.
그런데 성체분배 끝나고 설거지를 하시던 신부님의 모습을 보면서문득 예수님께서신부님이 되라고 나를 부르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미사놀이를 하며 ‘새끼 신부라는 별명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선교사가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교 사제를 선택하셨는지요?
제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가톨릭학교였고종교 수업시간에 선교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오세아니아와 아시아에서 활동하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마태오리치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촌형의 도움으로 형이 다니던 신학교에 입학하였고형은 2   신학교에서 나와 결혼하여  살고 계시면서 평신도로 열심히 선교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끝까지 사제의 길을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사촌형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시게  동기와  느낌은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중국으로 가고 싶었는데공산국가라서 종교의 자유도 없고 들어가기가 힘들었습니다그래서 성소 지도신부님의 영향으로 일본으로  생각도 했었지만신부님들을 많이 필요로 하고 신자들의 반응이 활발한 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으며신학생 때부터 신청해서 선발이 되었습니다한국은 구체적으로 생각은 못하고 왔었는데 전혀 다른 세상이다라는 느낌.....사람들의 모습도시의 모습김포공항에 도착 했을  군인들탱크군비행기도 많았기 때문에 군인들이 지키는 나라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멕시코는 군인들 보기가 쉽지 않거든요중고등 학생들의 모습은 멕시코 예비 수녀들 같았어요성수동 성당에 도착해서 신발을 신고 들어갔다가주방아주머니께 크게 야단을 맞으면서 문화의 차이를  날부터 느꼈지만사람들이 친절해서  어려움 없이 지낼  있었던  같습니다

그동안 어느 곳에서 사목활동 하셨나요?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성소지도 신부로녹동에서는 본당대리로 임명(1985. 12)받아서 활동했으며사직동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1987. 5)하여 사목활동을 했습니다. 1995 년에는 1 년간 서강대학교에서 영성 신학을 공부하고, 1996 년부터 5 년간은 합정동 피정의집 지도신부와 꾸르실료 지도신부로 활동했습니다그리고 2001 년부터 7 년간 LA 성바오로성당에서 외국인근로자 사목활동을 했으며, 2010  1 월부터 현재까지는 서울 자양동성당 주임신부로 부임받아 사목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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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과달라하시 출생 .▪ 12  외방 소신학교 입학▪ 1979. 3 광주 대건 신학교 입학 ▪ 1977 한국 유학 (성수동 성당) 2 년간 한국어공부▪ 1981. 2  광주 북동 성당에서 부제서품 ▪ 1982. 2 과달라하라에서 사제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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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ércoles, 6 de noviembre de 2013

마음을 돌보는 참 사제이자. 선교사 이만우 신부


선교사 이만우  Fr Juan Manuel Serrano
 먼저후원회 회원여러분
고맙습니다저는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한국선교 소임을 받았는데당시에는 한국으로 선교를 갈수 있어서 기쁜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지금도 한국인들 곁에 있는 저는 행복한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과 중국등 다른나라에는 아직까지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성모마리아가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밑에서 고생하신 것처럼마리아가 보여주는 믿음을 잊지않고신앙생활안에서 짧은시간이라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합시다.또한조금씩 성모님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성지순례를 해보길 권합니다.말로만 듣는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설명할수 없을정도로 다릅니다.



INTERVIEW

1. 어떤 계기로 선교사의 길을 선택했는지요?

저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17살 때 미국으로 갔 습니다그곳에서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중고등학교시절을 보냈는데그때 다니던 본당신부님께 그림을 배우면서 신부로써 살아갈것을 생각했습니다.
7년동안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멕시코시티로 돌아왔는데미사때마다 어떤 신학생이 매주 본당으로 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선교활동을 했는데그때 5페소씩 내면서 도와주 면서 신학교 가길 생각했습니다.그 래서 과달 루 페선 교 회 본 부로 전화를 해 서 2 2살 인 데그때 는 1 2살 까 지만 신학 생 자격 신 학 교에 들어갈수 있냐고 물어보았고괜찮다고 해서 예비신학교에 등록하고 1년후어렸을때 부터 집안의 반대로 접었던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그리고, 10년후 제가 살았던 시골 본당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2.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요?
1973년 630일에 사제서품받고그해 10월에 한국으로 발령을 받아 비행기멕시코-미국 하와이-일본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는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녹동이 첫 본당이었고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저는 시골사람이여서 모내기나 농사일을 같이 하는게 즐거웠고한국사람들과 친하게 되었 습니다누굴 만나나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어디서 왔냐결혼은 했냐부인은 어디에 있냐왜 왔냐 는 질문을 똑같이 했습니다.그러나 차츰 저의 생활을 이해하게 되었고그때 비신자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신자가 되어 찾아오거나 우연히 만나기도 합니다.

3. 사목활동하실 때 인상깊었던 기억은?
날씨가 추울때나 언어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광주대교구 서교동구례순천소록도서울대교구 자양동인천교구 대부도본당에서 사목 하고성가병원에서 5년간 원목사제로서 활동했는데저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 들어주고 격려해준게 다입니다.저는 본당 사목할 때 누구든지 사제관을 찾아올수 있도록 늘 개방하는데자기들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하룻밤 자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건설공사현장에서 추락해 척추 3개가 분쇄골절돼 한양대병원에 입원해서 하반신이 마비돼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었던 신자가 있었는데그때 기도하고 위로해주었던 일로 지금은 천주교 신자가되어 성모님을 찬송하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최근에는 축일 때 모르는 사람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는데알고보니 그분이 절에서 재수할때 만난적이 있는 신자분이셨습니다.작년에 중국에서  밤늦게 시내 공원을 산책하다가 택시를 모두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 (5회의 녹내장수술로 잘 안보이심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걱정했는데어떤 공안간부가 숙소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식사초대첫번째 멕시코 친구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던 적이 있습니다어딜가나 착한 사람은 있는 것 같습니다




4. 후원회 회원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먼저고맙습니다.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서 마리아가 보여주는 믿음을 잊지 않고신앙생활 안에서 짧은 시간 이라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저도 작년에 중국에 가서 집도 없이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습니 다중국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데기회가 되면 말은 안 통하지만 그곳으로 가서 도와 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