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nes, 31 de marzo de 2014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라미로(Ramiro Zuniga Garibay) 신부


“한국에서의 선교활동은 옛날처럼 본당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을 펼치던 시기는 지났습니다. 그러나 다가갈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고 말씀하시는 라미로 신부님은 요즘 젊은이들을 찾아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길을 걷고 있다7년 전 순천 금당성당에서 주임신부로 근무할 때도 다정다감한 모습으로 신자들과 어울리며 활기찬 본당을 이끄셨던 것처럼....
  오늘도 변함없이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다하여 다가가는 남일오(라미로)신부님 편을 싣는다.                                                                  -

 “나가라” 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
  본당 공동체에서는 많은 신자들과 함께 사목활동을 하지만, 특히 대학교는 학교의 특성상 학생들이 너무 바쁘기 때문에 만나서 함께 활동하기가 어렵습니다.                    
소속된 신앙 공동체가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어렵고 힘들 때 찿아와서 신앙 상담을 하거나, 진로 상담을 하는 경우 외에는 주로 신부들이 찿아 가는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선교사로서는 보이지 않는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선교사로서 꿈과 열정 희망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지만 지금은 옛날처럼 한국 교회에 선교사들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본당 활동보다는 “나가라” 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때론 거리에서 학교에서 전철안에서 사회안에서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은 성당이 아닌 나가서 찿아 가는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르시는 주님
  저는 선교활동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심을 체험합니다. 육체의 병고를 통해서, 가족의 죽음을 통해서, 마음의 고통을 통해서, 친구를 통하여 때론 자신 스스   로를 통해서 부르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 눈에는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제가 선교사로서 보람 있었던 일은 자양동 성당에서 사목할 때 저를 찿아와 성사를 본 자매님과의 일입니다. 그 자매님은 믿음이 없는 남편과 결혼하여 완고한 시부모님 때문에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신앙을 지키면서, 드러내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가족을 위해 지금의 어려움을 참고 봉헌하면서 끝까지 믿음의 자녀로서 살아가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때, 주님께서 이 가족 안에서도 끊임없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놀랍고, 기쁘고, 살아 계심을 느끼면서 큰 보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오늘도 기도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계속 학교에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처음 한국에 도착해서 언어적인 문제 때문에 두려움 많이 있었고, 너무 힘이 들어 다른 나라로 가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기동 성당에서 있었던 드봉 주교님 강론을 듣고 또 주교님과의 만남을 통해, 주님께서 저를 한국에 보내 주셨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선교 사명을 완수한 것처럼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제가 한국에 왔다는 생각을 하고 새롭게 나의 삶을 봉헌 했습니다.
  저는 오늘도 기도합니다“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끝으로 과달루페 선교사들을 위해 관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기도해 주신 후원회원 모두에게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성모님의 사랑과 메시지를 전하고 나누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선교사들은 큰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미로 신부님을 기억하며        송아오스딩(순천지구 후원회장)

  2006 7월 순천금당성당 본당신부로 젊은 신부님이 부임해 오셨다. 남일오(라미로) 신부님이셨다.
  아주 젊었을 때 한국에서 본당 보좌신부로 활동하다 학업을 위해 본국으로, 다시 스위스로 유학을 하며 심리학을 공부했던 엘리트 신부님은 선교사로서의 열정도 대단하셨다.

  외국인으로서의 언어적 한계를 극복하며 원고를 보지 않고 열정적으로 강론하던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어린아이에서부터 할머니까지 세례명을 외워 다정스럽게 다가가려는 노력은 신자들을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머리가 명석하다고 소문이 날 정도였다.)

  5월 성모의 밤이면 해마다 자비(自費)를 들여 수박을 사서 신자들과 나눔을 할 정도로 본당 공동체의 친교에 힘썼다. 특별히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자세를 낮추어 대화하는 등 어린이 사랑이 대단하였으며, 소공동체의 활성화에도 남다른 열성을 보여주셨다.


  ()성당을 리모델링하여 신자들의 재교육과 만남의 공간으로, 사목회원들과 큰 소나무를 성당에 옮겨 심는 등 시설관리에도 힘을 쏟았다. 본인에게는 금당성당 10년사 편찬을 부탁하였었다. 그리하여 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함께 걸었던 10년 금당성당’을 발간할 수 있었다. 신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려 애썼으며 ‘본당의 날’에는 신자들과 함께 어울려 격의 없이 지내려 노력하는 정이 많은 사제로 기억한다.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신부님은 학생들에게도 훌륭한 선교사로 자리매김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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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 멕시코 과달라하라 출생  
▪ 1990 대신학교 졸업                     
▪ 1990 8 부제서품(과달라하라  베르나르도 성당)                             
▪ 1992 8 사제서품
▪ 1994 3 11 한국 입국(합정동 본부
▪ 1995 11-1999 4 신기동 성당 보좌 신부
▪ 1999 9-2001 자양동 성당 보좌 신부             
▪ 멕시코에서 대학원 공부  한국 재입국
▪ 2005-2006 자양동 성당 보좌 신부     
▪ 20067-20098 순천 금당성당 주임신부
▪ 2009-특수사목(학교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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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nes, 17 de marzo de 2014

“저를 보내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

최세르지오(Sergio Chuela Alvarez MG)신부


언어장벽 때문에 선교사로서의 어려움은 있지만, 이곳에선 선교사가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하느님께 의탁하며 그 분 안에서 함께 하는 협력자들과 함께 새로운 선교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중국 선교 활동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신 후원회원 모두에게 깊은 감사드립니다특히, 길림교구 신학교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과달루페 성모님께서 후안디에고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신것처럼, 선교사들의 활동  을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기도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중국 길림에서 최세르지오 신부-

세르지오 신부님은 한국에서 근무를 하다가 중국으로 다시 파견되신 한국지부소속 신부님이시며, 형제들이 12명이나 되는 대가족속에서 성장하신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이십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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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ER FROM FAR AWAY
중국 길림에서 편지(세르지오 신부)

✝ 찬미 예수님
  후원회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국 길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르지오 신부입니다.
이곳에 온지 10년이 되어갑니다. 2005년 중국에 함께 도착한 지부장 신부님께서는 가방만 전해주시고, 며칠 후 한국으로 들어 가셨습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은 낯선 땅에서 혼자 남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2년 동안 언어 공부하면서 기도와 묵상을 통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비자를 받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비자를 얻기 위해 대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기로 했으나, 2년 후 스페인어 수업이 없어지면서 강의 할 기회도 잃고 비자 문제로 또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중국에서의 선교활동은 어떻게 될까? 하는 걱정과 어렵게 시작한 모든 일들이 끝 날 것 같아서, 다시 결심을 하고 길림과 장춘을 오가며 5개 대학에 서류를 넣은 끝에 호와차우 대학에서 6개월 동안 파트타임 강사로 일하게 되었고, 6개월 후에는 풀타임으로 일하게 되어 중국에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언어는 부족했지만 주일에는 길림시에 있는 성당에 나가서 중국 신부님들과 인사도 나누고, 신부님들의 소개로 수녀원과 신학교를 방문하면서 교구 신부님들과도 친분을 맺게 되었습니다.

장춘으로 옮긴 후에는 주교님을 만나 뵐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주교님께서 네 분의 부제를 외국에 나가 공부 할 수 있도록 언어 공부를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도와 드린 결과, 두 분이 로마에 가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신학교에서 활동하고 계시며, 다른 두 분도 멕시코에 가서 공부 마친 후 본당 활동과 신학교에서 활동 중이십니다.
종교의 자유가 한국처럼 주어지지 않은 중국에서 주님께서는 과달루페 선교사들을 통해서 당신의 계획에 따라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계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누구를 보낼까?”하시며 일꾼을 찿고 계실 때 “저를 보내십시오. 제가 가겠습니다.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특별한 부르심 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중국에서는 1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 커피숍을 오픈 했지만, 자금난으로 문을 닫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조그만 어학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여건이지만 비자를 받고 정식 학원을 내기 위해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혼자서 2 6개월의 시간을 보내왔는데, 지금은 2년 전에 두 분 신부님이 오셔서 세 명의 신부가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일하고 있습니다.

과달루페 후원회원 여러분!
중국 신학교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선교사들의 활동을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기도와 사랑 부탁드립니다.


      ▪ 1965 .Mexico  출생                                                                         ▪ 1979 소신학교 입학
      ▪ 1994 사제서품 석사 과정 수료                                     ▪ 1998 한국 입국 서강대에서 한국어 공부
      ▪ 2000-2002 순천 금당 성당 보좌 신부
     ▪ 2002-2004 순천 조곡동 성당 보좌 신부
      ▪ 2005-현재 중국 길림성 사목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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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go, 2 de marzo de 2014

CORAZÓN 신부님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이사야서 49. 1

14대 과달루페 한국지부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심고라손 신부님은 한국 생활에서 언어적 어려움이 늘 함께 하신단다. 어렸을 적부터 성소의 꿈을 간직했던 신부님은 외방선교회에 들어간 후, 한국에서의 근무를 지원하셨고 맡은 바 소임을 조용히 실천하고 계신다. 빈틈없는 업무처리와 조용함 속에서 한국지부의 많은 짐을 짊어지고 이끌어 가시는 신부님의 모습을 담아본다
-편집자 주-    
            

INTERVIEW


말로는 설명하기 어렵습니다만...
어렸을 때부터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방의 교구 신학교에 입학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신학교에 입학했으며, 교육을 받으면서 교구 신부생활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목활동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달루페회 공동체에 들어가면서 제가 기도 속에 바라고 있는 것과 일치됨을 느꼈습니다. 또한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와서는 언어 때문에 가장 힘들었지만, 제가 원하는 삶과 잘 맞았습니다.
  

새로운 만남  -협조와 일치-
  한국에 와서는 한국말과 문화에 대해서 전혀 모르기 때문에 모든 게 생소하였으며, 제가 마치 벙어리, 귀머거리로 생각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생소했던 모든 것이 저에게는 새로운 만남이 되어서 차츰 익숙해졌고, 언어소통에서 오는 불편함도 신자들의 이해 덕분에 특별한 어려움 없이 사목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한국말은 어렵지만 신자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셔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금당성당에서는 신자들의 협조와 일치가 잘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고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공동체임을 느꼈습니다. 특히, 행사 때에는 형제님들께서 팔을 걷어 올리고 설거지 하는 모습은 타 본당에서는 본적이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중국과 북한에서의 봉사활동
  얼마 전 중국에서 사목하고 계신 신부님들을 일주일 정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중국은 종교의 자유가 없기 때문에 힘들게 사목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 유진벨재단을 통하여 3주정도 북한을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저보다도 많이 힘들게 살고 계신 분들의 생활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가능하면 정기적으로 북한에 가서 특수사목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모님의 사랑을 전달해 주시길
  현재 지부장 신부와 후원회 지도를 하고 있는데 어려운 점도 있지만, 더 좋은 일들이 많습니다. 덕분에 공동체에 대해서 더 깊이 알게 되고,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도 기쁨입니다. 특히, 저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만나는 사람들에게 말로써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하여 어떻게 말해야 될지를 고민하고, 언제나 부드럽게 말해야 되는 점이 가장 어렵습니다.
앞으로 지부장으로써 활동은 2년 정도 남았는데, 하느님의 도움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후원회를 위해 협조해 주시는 회원분들에게는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기도로써 보답을 하고 싶습니다.

기도 속에서 성모님의 메시지를 느끼고, 후안디에고처럼 성모님의 사랑을 전달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1964  Tlaxcala.Mexico  출생                               
 ▪ 1984 소신학교 졸업 
  ▪ 1992 대신학교 졸업                                           
  ▪ 1992 8 15 사제서품
  ▪ 1993 6 5 한국 입국                                      
  ▪ 1997-2000 율촌 성당 주임 신부  
  ▪ 2000-2004 자양동 성당 보좌 신부
  ▪ 2005-2009 본국에서 대신학교 지도신부와 소신학교 경리신부
  ▪ 2010-2011 순천 금당성당과 서울 자양동 성당 보좌신부 
  ▪ 2012 -현재 후원회 담당 신부한국지부장 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