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rnes, 29 de agosto de 2014

}…너를 선택했으니 꼭 네가 해야 하며…~ 박대민(Fermin Parra Conzalez) 신부

박대민(Fermin Parra Conzalez) 신부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고향과 가족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고향과 가족을 하느님께서 주셨습니다.
이 새로운 고향이 한국이고, 새로운 가족은 우리 과달루페외방선교 후원회 공동체입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서 사목 활동과 사제 선교활동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는 1993년부터 예수님을 따르고 있고, 앞으로 죽는 날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봉사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서 반갑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과달루페 외방 선교 후원회 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AMIGOS PARA SIEMPRE(영원한 친구인) 박대민 Fermin 신부-

▪ 1976년 Mexico Monclova 출생
▪ 2003년 3월 한국 입국
▪ 2004년 서강대학교 한국어 공부
▪ 2006년 부제서품(염주동 성당)
▪ 2006년 2월 금호동 성당 사목 실습
▪ 2007년 6월 사제서품(멕시코)
▪ 2007년 이후 멕시코에서 활동
▪ 2014년 7월 한국 입국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찬미 예수님!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저는 사랑의 선교사입니다.
어디든지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시면, 제가 그곳으로 가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려 합니다. 지금부터 사랑의 선교사가 되고 싶은 저 페르민이 누구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박페르민 신부입니다.
저는 멕시코 북쪽에서 태어났고, 고향은 먼클러바(Monclova)입니다.
제 고향은 미국 텍사스 바로 아래에 있고, 멕시코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강철공장이 있습니다. 사막지역이라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가족도 아름다운 사람들인데,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그리고 남동생 3명의 가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7살에 Saltillo 교구 신학교에 들어갔고, 22살에 과달루페외방 선교회에 들어갔으며,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한국에는 2003년 3월21일에 왔는데 아는 사람도 없었고, 한국어를 해야 한국인들하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너무 힘들었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고, 먹는 음식도 다르고, 친구들도 없고 문화도 달라서 저는 한국인 박대민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습니다.
서강대학교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후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1년 동안 생활했는데 수업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공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교수님들께서 수업 때 어려운 한자말로 설명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전 한국에서 너무 힘듭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금호동 성당에서는 좋은 신부님들과 좋은 공동체분들을 만나서 매우 행복했습니다.
특히 주임신부님, 보좌신부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다시 돌아 갔다가 지난 2014년 7월12일에 한국 선교를 위해 다시 왔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과달루페외방선교 후원회라는 새로운 가족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을 후원회 미사에서 처음 만났을때, 아버님, 어머님, 형님, 누님처럼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나의 일을 맡길 수도 있지만, 내가 너를 선택했으니 꼭 네가 해야 하며,
네가 나의 청을 들어 너의 중재와 도움으로, 나의 뜻이 완성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니칸모포우아 59-

이 말씀을 가슴에 두고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평화안에서 박대민 Fermin신부 씀









jueves, 7 de agosto de 2014

그러나 순명하여 2011년 1월 추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리고(Rigoberto Colunga Hernandez) 신부

어느 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신부님께서 아프리카 선교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그때부터 ‘나도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가야지’하고 맘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서 선교하라는 말씀에 순명하고, 지금은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중국 신학교 기숙사가 완공되어서 새로운 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    쁘고,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계속 관심과 도움 그리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회원님들의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리고 신부-

      ▪ 1975년 Mexico Rio verde 5남 1녀중 차남 
      ▪ 2004년 한국입국. 어학 공부 후, 광주신학교에서 2년 6개월 수학
      ▪ 2007년 부제서품(광주신학교)
      ▪ 2008년 6월 사제서품(멕시코)  
      ▪ 2009년1월-2010년8월  서울 자양동 성당 보좌신부
      ▪ 2011.1월-현재 중국장춘 어학공부
      ▪ 2012년-현재 길림 대신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의. 면담. 고해성사

하느님의 부르심
어린 시절 본당에 복사단이 처음으로 생기고, 형과 함께 복사를 서게 되었습니다. 
아주 어렸고 뭐가 뭔지 잘 몰랐지만, 가슴 떨림과 함께 신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성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망하던 소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어느 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신부님께서 아프리카 선교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부터 ‘나도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가야지’하고 맘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첫사랑 자양동 성당
아프리카 선교가 꿈이었지만, 한국으로 가서 공부하라는 말씀에 순명하였습니다. 한국은 언어도 어렵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광주신학교에서 2년6개월 수학 후 부제품을 받고, 1년 후에는 멕시코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보좌 신부로써 처음 부임한 곳이 나의 첫사랑과 같은 자양동 성당이었습니다. 
유대철 어린이 공부방, 스페인어 공부방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탁구대도 설치하여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친교를 나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모두들 많이 이용하였고 즐거워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탁구대 덕분에 교우가 아니더라도 웃으면서 먼저 인사하는 청소년, 어린이들이 많이 있어서 더욱 행복했습니다. 
짧았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첫사랑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나를 부르는 중국
이제 한국어도 익히고 행복해 할 때 지부장 신부님께서 혹시 중국에 관심있냐고 물으시길래 관심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발령을 내리셨습니다
관심 있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저의 마음한편은 가고 싶지 않다는 그런 심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명하여 2011년 1월 추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선교사로서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가 없기에 신부신분을 감추고, 오로지 학생신분으로 장춘에서 어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공부하다보니 중국어도 잘 배우고 다른 일반 학생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친구라 생각하고 불쑥 찾아와서 언제 결혼할거냐고 묻기도 했는데, 신부임을 말 못하고 학생신분으로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춘에서 3시간 걸리는 길림대신학교에서 2012년부터 스페인어 강의와 주일에는 고해성사와 면담 그리고 신학생과 다른 교구 사제들의 지도신부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주일을 거룩히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국교회와 지하교회간의 협력의 중간자로서
중국교회에서 세미나 혹은 단체를 만들어 봉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길림의 애국교회, 지하교회가 서로 무관심하던 관계에서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되는데 중간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영하 40도~50도의 추운 날씨에 새벽5시부터 밤11시까지 고해성사를 주었던 일입니다. 좁은 고해실에 앉아 있으면 온 몸이 얼어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체감온도는 밖의 온도 보다 훨씬 더 내려갔고,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언어가 부족한데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신자들의 말을 알아들 수 있었던 건 신비일 뿐입니다.
추운 겨울에 일이 없자 신자들은 평일 3대의 미사를 모두 참례하곤 합니다.
무릎을 꿇고 강복받길 원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어학공부도 마치고 중국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중입니다.

후원회원 여러분께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중국 신학생들이 보다 안정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계속 관심과 도움 그리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회원님들의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중국 신학교 건립 지원


  우리의 정성어린 후원금이 어려운 중국 천주교회의 신학교 건립에 보태어 졌습니다. 
  지금까지 3만1천 달러가 지원 되었으며, 앞으로도 1만5천 달러가 더 지원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느 곳 이나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우 이냐시오(Ignacio Garza Evia Ugarte) 신부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습과 정신으로 활동하고 계신 후원회 여러분들께 진심으로감사의 말씀 드리며, 선교사 신부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 깊이 묵상하고, 성모님의 평화를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 이냐시오 신부-



1948Mexico. 10남매중 막내로 출생 ▪ 1972년 광주신학대 졸업
1974년 사제서품 (멕시코) ▪ 1974-1978년 멕시코 소신학교 지도 신부
1978년 한국 재입국. 소록도 성당 주임신부(4개월) 성수동 성당 주임신부
1978-1982년 부산 사직동 성당 주임신부 ▪ 1982-1982년 고흥 성당 주임신부
1983-1987년 멕시코 대신학교 지도신부 ▪ 1987-1991년 광주 쌍촌동 본당 주임신부
1991-1997년 순천 매곡동 성당 주임 신부. 한국 지부장 ▪ 1997-2003년 멕시코 과달루페 부총장
2006-2007년 광주 망운성당 주임 ▪ 2007-2011년 순천 가롤로병원 원목실
2011- 현재 중앙대병원 원목실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과의 만남
제가 선교사 신부의 꿈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때입니다.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에 과달루페외방선교회 신부님들께서 방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모이게 하신 후, 성소와 선교에 대해서 강론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7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강론이 쉽게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만, 막연히 선교사 신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며 살고 계시는 신부님들이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소신학교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지만, 버스로 12시간이나 걸리는 과달라하시에 있는 학교까지 어린 저를 보내는것을 걱정하셔서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해년마다 부모님께 똑같은 부탁을 드렸고, 결국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중.고등 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대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예수회 신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서 활동한다는 말을 듣고, 저도 공부를 마칠 즈음에 한국 선교활동을 신청하여 선교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하느님이 나를 부르셨을까? 아니면 내 고집으로 신학교에 왔을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는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고, 어느 곳이나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통해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
멕시코 대신학교 지도 신부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부임 받은 광주 쌍촌동 성당은 시설이 열악했습니다. 공소만 있고, 예비자 교리실이나 레지오모임 공간도 없고, 오로지 성당밖에 있는 교리실 한 개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주님께서는 저를 통해서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신자들과 힘을 합하여 성당 재건축 사업이 이루어졌고, 그때의 보람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차츰, 후임 신부님께서 사제관, 수녀원, 주차장등을 건립하면서 만족할만한 성당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믿음과 받아들임
저는 지금 병원 원목실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신자들을 통해서 신앙심을 더 굳건하게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인 남편을 정성껏 간호하던 젊은 부인의 모습을 통해서 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굳건한 믿음 안에서 남편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며, 선종할 수 있도록 기도하던 모습을 보고 사제인 저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자매님의 모습을 통해서, 저도 또 한번 배웠습니다.


성모님의 모습과 정신으로 활동하고 계신 후원회 여러분께 감사

저는 앞으로 현재 하고 있는 활동들을 계속하면서, 주님의 도구로써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선교 사명이 끝나는 날에는 가족들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소임을 마친 선교사들을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리라 믿으며……
마지막으로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습과 정신으로 활동하고 계신 후원회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선교사 신부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 깊이 묵상하고, 성모님의 평화를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벤자민(Benjamin Marin Cano) 신부

아무리 힘들어도 기쁜 마음으로…”
벤자민(Benjamin Marin Cano) 신부

한국말 구사에 거침이 없으시기 때문에 신자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시는 벤자민 신부님의 한국생활을 싣는다. 대를 이어가야 한다는 자식으로서의 고민도 많았지만, 신부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선교사의 길로 들어서게 했고 외방선교회의 신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 근무를 지원하셔서 지금은 광주대교구에서 유일하게 선교사 신부님 사목지인 순천 상사성당 본당신부로서 활동하고 계신다. 연세가 많으신 신자들과 함께 교육관을 마련하고, 별량공소를 신축하는 등 열정적인 사목활동을 펼치고 계신다. -편집자 주-
▪ 1963Mexico city. Mexico 출생 ▪ 1982년 고등학교 졸업
▪ 1989년 대신학교 졸업 ▪ 1992년 한국 입국후, 2월에 광주 신학교 입학
▪ 1994년 부제품 (멕시코) ▪ 1995년 사제서품 (멕시코)
▪ 1995-1998년 멕시코대학 지도 신부 ▪ 1998-1990년 대부도 성당 보좌 신부(8개월)
▪ 1999-2002년 신기동 성당 보좌 신부 ▪ 2002-2004년 자양동 성당 보좌 신부
▪ 2004년 조곡동 성당 보좌 신부 ▪ 2005년 조곡동 성당 주임 신부
▪ 2009년 망운성당 주임신부 ▪ 2012- 현재 상사성당 주임신부

어릴적 꿈
저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카톨릭 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수녀 선생님에게서 선교사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인지 4학년 아마 10살경 쯤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학교 수사님이 되고 싶었지만, 6학년 때 처음 만난 과달루페회 신부님이 우리 학교 학생들을 초대하여 신학교에 방문했을 때부터 예비 신학생이 되었어요.
매월 2번씩 신학교에 다녔고, 피정이나 방학 때마다 신학교에 가서 신부 되기를 기도했지만, 아버지가 허락을 안 해주셨기 때문에 소신학교 때는 결정을 못하고, 고등학교 졸업후에 신학교에 가길 결정했어요.
제가 장남이고, 벤자민 3세여서 신학교에 가면 대가 끊긴다는 생각 때문에 반대하셨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을 막을 순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의 선교사 생활
처음에는 일본에서 선교사 활동을 하고 싶었지만, 안두수 신부님께 한국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듣고 나서, 수련기가 끝난 3년 후에 한국에 가는 것을 신청했어요.
신학교에서의 생활은 일반 학교와는 달리 공부하고, 기도하고, 청소하고, 운동하고, 공동체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생활하기가 조금 어려웠어요. 하지만 신학교 생활이 너무 좋아서 한국에 빨리 가고 싶었고, 도착 하자마자 너무 재미있게 살았습니다.
한국말 공부가 가장 어려웠지만, 모두 다 새로웠고, 사람들은 친절해서 재미있게 살았어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하게 생활했어요.
지금도 가끔씩 언어나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더 많습니다. 이렇게 한 20년 정도 한국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본당에서 사목활동 하면서도 큰 어려움은 많지 않았어요.
한국사람들이 대부분 친절했기 때문인데, 상사 성당 사제관과 교육관 건립할 때는 재정문제 때문에 조금 힘들었어요. 그때 별량 공소도 같이 공사 하고 있어서 신자분들께 부부담을 드려서 죄송한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바자회때에는 근처에 있는 본당 신자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서 큰 힘이 되었는데,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 안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저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 안에서 살게 하기 위해서 신부가 되었어요.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어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을 갖고, 아무리 힘들어도 기쁨 마음으로 사제생활을 하고 있어요.
과달루페 후원회원들께서도 어려움 중에 하느님의 희망과 믿음 속에서, 항상 기쁜 마음으로 생활하시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입니다.


상설고해소 운영순천 과달루페 본부에서 매주 금,토요일(오전10-오후5) 고해성사
병원 사목 활동순천 메디팜 병원과 평화병원에서 매월 둘째, 넷째주 수․목요일 봉성체
멕시코 성지 순례단 모집의문사항은 지부의 수산나 자매님께(061-726-5389)
20151월에 성지순례 예정이며, 희망하시는 분은 매월 십만원을 기본으로 입금해 주시면 적립하겠습니다.

순천지역 미사및 회합 626() 730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본부
서울지역 미사및 회합 617() 2합정동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합정마트앞 도로 직진하여 동원아파트 뒷편 절두산성지 담 사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