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mingo, 10 de julio de 2011

옥현진 시몬 주교님의 서품식

옥현진 시몬 주교
"내안에 머무러라"(요한15,4)
Manete in me

전님 무안 출생 1968.3.5
사제서품 1994.1.26
주교임명 2011.5.12
주교서품 2011.7.6
임동 대성당
천주교 광주대교구 

□ 지난 2011년 5월 12일 광주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옥현진(시몬) 주교의 서품 미사가 7월 6일(수) 오후 2시 광주대교구 주교좌 임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주례로 거행된 주교 서품 미사는 서품 청원, 임명장 낭독, 주교로 선발된 이의 서약, 안수와 도유 및 복음서 수여, 주교를 상징하는 반지와 주교관, 지팡이 수여, 평화의 인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평온심을 구하는 기도

평온심을 구하는 기도
 
하느님, 허락하소서.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심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 도와주소서.
제가 한 번에 하루를 살아가고,
한 번에 한순간을 즐기고,
어려움을 평화로 가는 길로 여기게 하소서.
예수님께로부터 배우게 하소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어도,
이 고장 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게 은총을 주소서.
저와 저희 형제자매를 위한 당신의 바램을 감싸 들인다면,
당신께서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하시리라는 신뢰심을 주소서.
적당히 행복하게 하소서, 이 삶에서.
그리고
최고로 행복하게 하소서, 내세에서 당신과 함께.
아멘.
--라인홀트 니버 (Reinhold Neibuhr)--

miércoles, 25 de mayo de 2011

한국의 아들・딸 눈에 밟히지만 ・・・



 소선도 신부님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소선도 (Jose Sandoval I)신부

“꼭 다시 만납시다. 하느님 나라에서라도!
백발의 노신부는 반평생을 보낸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미사에서 애써 이별의 아쉬움을 감췄다. 멕시코 출신 소선도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78) 신부가 8일 서울 자양동성당 송별미사 주례를 끝으로 30여년 한국 사목활동을 마쳤다.
소 신부는 멕시코에서 사제품을 받을 당시 “더 가난한 나라에 가서 봉사하겠다”며 한국 선교사로 자원했다. 1967년 광주에 도착해 서울, 인천 등 여러 본당과 병원에서 사목했다. 그 중에서도 자양동본당은 소신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75년 성수동본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그가 직접 터를 고르고 성당을 세웠기 때문이다.
자양동본당과 특별한 인연
“그때는 이 주변이 전부 배추밭이었어요. 이런 황무지에 성당을 세워 무엇하느냐고, 차라리 강남에다 짓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랬던 곳이 이렇게 신자들도 늘어나고 규모도 커진 것을 보니 너무 뿌듯합니다.
그가 굳이 자양동을 고집했던 이유는 당시 달동네였던 노른산의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들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먼 성수동까지 오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는 “성당이 완공되자 말도 못하게 좋아하던 신자들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소 신부의 ‘자양동 사랑’ 만큼이나 신자들의 소 신부 사랑도 각별했다. 해외발령을 받아 사목한 후 13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양동본당 신자들은 소 신부가 좋아하는 빈대떡을 부쳐 합정동 수도원까지 찾아갔다. 그는 “그때 먹었던 빈대떡의 기막힌 맛이나, 자양동 할머니들 손에 이끌려 간 놀이공원에서 아이처럼 놀던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고 회상했다.
10여 년 병원사목도
본당 청년들과의 기억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당시 성수동 부근에는 공장이 많아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여성 근로자들이 흔했다. 소 신부는 대학생 봉사자들과 함께 야학을 만들어 근로자들을 가르쳤다. 1년 뒤에 아가씨들에게 졸업장을 줬는데, 다들 감격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아가씨들은 요즘도 만나는데, 아직도 나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한국에서 마지막 10여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신학생 시절 주말마다 결핵환자들을 돌보며 “평생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마음먹은 꿈을 제대로 이뤄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환갑을 넘긴 나이에 로마로 유학을 떠나 원목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18일 출국해 멕시코 야왈라카로 간다.
멕시코 가서도 빈민사목
“도시 변두리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봉사해야죠. 몇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힘 닿을때까지는 계속 봉사할 겁니다.
그는 ‘진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도 “한국의 아들딸들이 눈에 밟힌다”며 재회를 기약했다.

martes, 5 de abril de 2011

"하느님의 말씀을 알고 묵상하는 공동체가 되자"

서울 자양동 본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서 40주간동안 공부를 하고 참석자가 300명 정도 됩니다... 이 번 주의 평화 신문에서 그 일에 대해서 기사가 나왔습니다...주임 신부님, 과달루페회소속 양진혼 (Gerardo Cabral)입니다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371797&path=201103

domingo, 13 de febrero de 2011

-사제 서품 60주년 (환갑)-


P. Ricardo Colin, MG

요즘은 의학기술의 발달로 평균수명이 80세 이상이 되어 한국에서도 환갑이라고 해서 여전과 같이 특별한 행사나 잔치를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제가 되어 60년을 산다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주님의 큰 축복이 아니겠습니까?

사제서품 25주년을 은경축, 50주년을 금경축이라고 하는데 60주년은 특별한 이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이름 붙일 수 없을 만큼 특별하다는 의미겠지요.
리까르또 (Ricardo Colin) 신부님은 올해로 사제서품 60주년을 맞아 지난 1월 5일 멕시코 Queretaro 성가정 성당에서 60주년 감사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80이 넘은 노구로 아직도 성가정 성당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보통으로 선교사사제는 70세가 되면 은퇴할 수 있지만 신부님께서는 본인이 움직일 수 있을 때 까지 활동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신부님은 멕시코에서 오랫동안 과달루페회 재정담당의 임무를 부여 받아 과달루페선교회 살림을 맡아 오셨으며 한국에서도 선교활동을 하셨는데 특히 매곡동본당 성전을 건립하셨을 당시 보기 드문 아름다운 성전으로 소문나 많은 신자들이 일부러 방문하여 미사참례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동안 과달루페선교회 활동에 대한 책도 준비하셔서 귀국 후 마무리하셨습니다.


사제 삶의 환갑을 맞이하신 신부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하느님께서 신부님의 사제로서 직무에 영원히 축복해 주시길 빕니다.

-고요셉 신부님의 금경축 -




고요셉 (Fidencio Contreras G, MG) 신부님께서는 2011년 1월 6일 사제서품 50주년을 맞아 멕시코 과달라하라에 있는 성요셉의 집에서 금경축 미사를 봉헌하셨습니다. 이 날 미사에는 고요셉신부님의 가족과 친척, 친구들이 많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셨습니다.

신부님은 한국에서 과달루페 한국지부 지부장을 역임하셨고 원목사목, 자양동성당, 금당성당 등 여러 본당에서 35여년의 오랜 세월동안 사목활동을 하셨습니다. 특히 금당성당에서는 초대신부님으로 성당이 지하에 있어 겪는 불편함도 마다않으시고 항상 온화하고 친절한 성품으로 신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신부님은 한국에서 2009년까지 활동하시다가 건강상의 문제로 멕시코로 돌아가셔서 은퇴하신 신부님들이 머무시는 성 요셉의 집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신부님을 기억하는 많은 한국 신자들은 50년 사제생활의 절반이상을 한국에서 활동하신 신부님께 감사드리고 그 분의 사랑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신부님의 금경축을 축하드리며 언제나 하느님의 축복 속에 행복하시길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