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eves, 18 de agosto de 2011

추가브리엘 신부님 선종



지난 8 5일 오후4 55분 멕시코 만사니요 골리마(Manzanillo, Colima)에서 추가브리엘 신부님이 선종하셨습니다.
신부님은 쾌활하고 활력이 넘치는 분으로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마술을 보여주는 마술사 신부님으로 통하였습니다. 한국 신자들은 추가브리엘 신부님을 항상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유머가 풍부하여 만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어른 아이 구별 없이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겸손한 신부님으로 기억합니다.
추신부님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960 1 6일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선교사제의 성소를 키워나갑니다. 멕시코시티 대신학교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고 한국으로 파견된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유학생 첫 번째 팀으로 1969 9월 한국에 입국하여 1971 3월 서울가톨릭대학교에 입학하였고 과달루페회가 광주교구에서 선교사제로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이듬해 광주가톨릭대학교로 편입, 1973 8 15일 부제품을 받았습니다. 부제품을 받고 멕시코로 돌아가 1974 10 6일 멕시코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1975 4 10일 과달루페회 선교사제로서 한국에 다시 오셨습니다.
신부님은 사제로서 성소후원회 책임자, 신학생들의 교육 담당, 본당사목, 세 분야에서 활동하셨고 한국에서는 부산교구, 서울교구, 광주교구의 여러 본당에서 활동하셨습니다. 신부님께서 지인 수녀님께 보낸 편지에 선교활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소망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을 만큼 신부님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나 마다않고 찾아가 행동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신부님의 선종 소식을 듣고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계셨던 자양동 성당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미사가 봉헌되었고 순천 과달루페 본부에서도 조곡동성당, 금당성당 신자들이 본부의 성당 자리가 부족할 정도로 많이 참석해 신부님을 애도하며 신부님의 영원한 안식을 위한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미사참례를 하신 어떤 자매님께서는 한국을 떠난 지 1년 밖에 안 된 신부님의 갑작스런 선종 소식을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리고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좋은 분이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통해 사랑하는 친구였고, 동창이었으며, 목자요, 선교사이셨던 추가브리엘 신부님과 이별을 하고 하느님 나라에서의 재회를 기약했습니다.
“가브리엘 신부, 주님의 축복을 받으시길 빌며모든 수고를 주님께서 갚아 주시길 빕니다!!
주님!, 가브리엘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martes, 9 de agosto de 2011

추 가브리엘 신부님 선종

추규응 가브리엘 신부님 약력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소속)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추규응 가브리잉 (Gabriel Casillas Horta) 신부님은 (향년 67세)께서 한국지각으로 8월 5일 (금) 오후 4시55분 본국인 멕시코에서 지병으로 선종하셨습니다.

  1969년에 신학생으로 한국에 입국한 신부님께서는 서울과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공부를 한 후, 1974년 10월 6일 본국에서 사제품을 받으셨습니다. 이후 1975년에 한국에 파견돼 고흥, 구례, 쌍촌동, 조곡동 본당 및 서울 자양동과 부산 사직동 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하셨습니다.

 미사와 기도 중에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빌어주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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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멕시코
1944.11.29
소신학교 입학
1960.1.6
한국 입국 (신학생)
1969.09.10
서울가톨릭 대학교 입학
1971.03.09
광주가톨릭 대학교 편입
1972.03.01
부제품 (광주대교구: 조정동 성당)
1973.08.15
사제품 (멕시코)
1974.10.06
한국 재입국
1975.04.10
고흥 본당 주임
1975.06.25
자양동 본당 주임
1978.08.26
과달루페 한국지부 성소 지도 신부
1979.04.21
쌍촌동 본당 주임
1983.09.02
과달루페회 대신학교 부학장
1984.08.14
과달루페회 후원회국 총무 - 국장
1989-2002
광주대교구 조곡동 본당 주임
2002-2004
서울대교구 자양동 본당 보좌
2005-2008
서울대교구 자양동 본당 주임
2009-2010
과달루페회 후원회 국장
2010-
선종, 만사니요, 멕시코
2011.08.05. 오후 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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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mingo, 10 de julio de 2011

옥현진 시몬 주교님의 서품식

옥현진 시몬 주교
"내안에 머무러라"(요한15,4)
Manete in me

전님 무안 출생 1968.3.5
사제서품 1994.1.26
주교임명 2011.5.12
주교서품 2011.7.6
임동 대성당
천주교 광주대교구 

□ 지난 2011년 5월 12일 광주대교구 보좌주교로 임명된 옥현진(시몬) 주교의 서품 미사가 7월 6일(수) 오후 2시 광주대교구 주교좌 임동성당에서 거행되었다.

□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의 주례로 거행된 주교 서품 미사는 서품 청원, 임명장 낭독, 주교로 선발된 이의 서약, 안수와 도유 및 복음서 수여, 주교를 상징하는 반지와 주교관, 지팡이 수여, 평화의 인사 순으로 진행되었다.




평온심을 구하는 기도

평온심을 구하는 기도
 
하느님, 허락하소서.
제가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온심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그리고 서로 다름을 알 수 있는 지혜를.
하느님, 도와주소서.
제가 한 번에 하루를 살아가고,
한 번에 한순간을 즐기고,
어려움을 평화로 가는 길로 여기게 하소서.
예수님께로부터 배우게 하소서.
내가 생각하는 그런 세상이 아니어도,
이 고장 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제게 은총을 주소서.
저와 저희 형제자매를 위한 당신의 바램을 감싸 들인다면,
당신께서 모든 것을 올바르게 하시리라는 신뢰심을 주소서.
적당히 행복하게 하소서, 이 삶에서.
그리고
최고로 행복하게 하소서, 내세에서 당신과 함께.
아멘.
--라인홀트 니버 (Reinhold Neibuhr)--

miércoles, 25 de mayo de 2011

한국의 아들・딸 눈에 밟히지만 ・・・



 소선도 신부님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소선도 (Jose Sandoval I)신부

“꼭 다시 만납시다. 하느님 나라에서라도!
백발의 노신부는 반평생을 보낸 이국땅에서의 마지막 미사에서 애써 이별의 아쉬움을 감췄다. 멕시코 출신 소선도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78) 신부가 8일 서울 자양동성당 송별미사 주례를 끝으로 30여년 한국 사목활동을 마쳤다.
소 신부는 멕시코에서 사제품을 받을 당시 “더 가난한 나라에 가서 봉사하겠다”며 한국 선교사로 자원했다. 1967년 광주에 도착해 서울, 인천 등 여러 본당과 병원에서 사목했다. 그 중에서도 자양동본당은 소신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1975년 성수동본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그가 직접 터를 고르고 성당을 세웠기 때문이다.
자양동본당과 특별한 인연
“그때는 이 주변이 전부 배추밭이었어요. 이런 황무지에 성당을 세워 무엇하느냐고, 차라리 강남에다 짓는 편이 낫지 않겠냐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랬던 곳이 이렇게 신자들도 늘어나고 규모도 커진 것을 보니 너무 뿌듯합니다.
그가 굳이 자양동을 고집했던 이유는 당시 달동네였던 노른산의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노인들이 미사를 드리기 위해 먼 성수동까지 오는 것이 마음 아팠다. 그는 “성당이 완공되자 말도 못하게 좋아하던 신자들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말했다.
소 신부의 ‘자양동 사랑’ 만큼이나 신자들의 소 신부 사랑도 각별했다. 해외발령을 받아 사목한 후 13년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자양동본당 신자들은 소 신부가 좋아하는 빈대떡을 부쳐 합정동 수도원까지 찾아갔다. 그는 “그때 먹었던 빈대떡의 기막힌 맛이나, 자양동 할머니들 손에 이끌려 간 놀이공원에서 아이처럼 놀던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고 회상했다.
10여 년 병원사목도
본당 청년들과의 기억도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다. 당시 성수동 부근에는 공장이 많아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여성 근로자들이 흔했다. 소 신부는 대학생 봉사자들과 함께 야학을 만들어 근로자들을 가르쳤다. 1년 뒤에 아가씨들에게 졸업장을 줬는데, 다들 감격해서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아가씨들은 요즘도 만나는데, 아직도 나를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는 한국에서 마지막 10여년을 병원에서 보냈다. 신학생 시절 주말마다 결핵환자들을 돌보며 “평생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하겠다”고 마음먹은 꿈을 제대로 이뤄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환갑을 넘긴 나이에 로마로 유학을 떠나 원목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는 18일 출국해 멕시코 야왈라카로 간다.
멕시코 가서도 빈민사목
“도시 변두리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봉사해야죠. 몇 년이 될지는 모르지만 힘 닿을때까지는 계속 봉사할 겁니다.
그는 ‘진짜 고향’으로 돌아가는데도 “한국의 아들딸들이 눈에 밟힌다”며 재회를 기약했다.

martes, 5 de abril de 2011

"하느님의 말씀을 알고 묵상하는 공동체가 되자"

서울 자양동 본당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고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서 40주간동안 공부를 하고 참석자가 300명 정도 됩니다... 이 번 주의 평화 신문에서 그 일에 대해서 기사가 나왔습니다...주임 신부님, 과달루페회소속 양진혼 (Gerardo Cabral)입니다
http://www.pbc.co.kr/CMS/newspaper/view_body.php?cid=371797&path=20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