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ércoles, 6 de noviembre de 2013

마음을 돌보는 참 사제이자. 선교사 이만우 신부


선교사 이만우  Fr Juan Manuel Serrano
 먼저후원회 회원여러분
고맙습니다저는 사제서품을 받자마자 한국선교 소임을 받았는데당시에는 한국으로 선교를 갈수 있어서 기쁜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지금도 한국인들 곁에 있는 저는 행복한 선교사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과 중국등 다른나라에는 아직까지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성모마리아가 예수그리스도 십자가 밑에서 고생하신 것처럼마리아가 보여주는 믿음을 잊지않고신앙생활안에서 짧은시간이라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합시다.또한조금씩 성모님에 대한 역사를 공부하면서 성지순례를 해보길 권합니다.말로만 듣는것과 실제로 보는 것은 설명할수 없을정도로 다릅니다.



INTERVIEW

1. 어떤 계기로 선교사의 길을 선택했는지요?

저는 시골에서 살았는데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17살 때 미국으로 갔 습니다그곳에서 살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중고등학교시절을 보냈는데그때 다니던 본당신부님께 그림을 배우면서 신부로써 살아갈것을 생각했습니다.
7년동안의 미국생활을 마치고 멕시코시티로 돌아왔는데미사때마다 어떤 신학생이 매주 본당으로 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달라는 선교활동을 했는데그때 5페소씩 내면서 도와주 면서 신학교 가길 생각했습니다.그 래서 과달 루 페선 교 회 본 부로 전화를 해 서 2 2살 인 데그때 는 1 2살 까 지만 신학 생 자격 신 학 교에 들어갈수 있냐고 물어보았고괜찮다고 해서 예비신학교에 등록하고 1년후어렸을때 부터 집안의 반대로 접었던 신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그리고, 10년후 제가 살았던 시골 본당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2. 한국에 처음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요?
1973년 630일에 사제서품받고그해 10월에 한국으로 발령을 받아 비행기멕시코-미국 하와이-일본을 거쳐서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다는 즐거움이 더 컸습니다.
녹동이 첫 본당이었고대부분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저는 시골사람이여서 모내기나 농사일을 같이 하는게 즐거웠고한국사람들과 친하게 되었 습니다누굴 만나나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어디서 왔냐결혼은 했냐부인은 어디에 있냐왜 왔냐 는 질문을 똑같이 했습니다.그러나 차츰 저의 생활을 이해하게 되었고그때 비신자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신자가 되어 찾아오거나 우연히 만나기도 합니다.

3. 사목활동하실 때 인상깊었던 기억은?
날씨가 추울때나 언어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광주대교구 서교동구례순천소록도서울대교구 자양동인천교구 대부도본당에서 사목 하고성가병원에서 5년간 원목사제로서 활동했는데저는 특별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 들어주고 격려해준게 다입니다.저는 본당 사목할 때 누구든지 사제관을 찾아올수 있도록 늘 개방하는데자기들의 고민을 이야기 하고하룻밤 자고 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건설공사현장에서 추락해 척추 3개가 분쇄골절돼 한양대병원에 입원해서 하반신이 마비돼 다시는 걷지 못할 수도 있었던 신자가 있었는데그때 기도하고 위로해주었던 일로 지금은 천주교 신자가되어 성모님을 찬송하는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분도 계십니다.최근에는 축일 때 모르는 사람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는데알고보니 그분이 절에서 재수할때 만난적이 있는 신자분이셨습니다.작년에 중국에서  밤늦게 시내 공원을 산책하다가 택시를 모두 놓친 적이 있었습니다앞이 잘 보이지 않는데다 (5회의 녹내장수술로 잘 안보이심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걱정했는데어떤 공안간부가 숙소까지 차로 데려다 주고식사초대첫번째 멕시코 친구라며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던 적이 있습니다어딜가나 착한 사람은 있는 것 같습니다




4. 후원회 회원에게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먼저고맙습니다.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밑에서 마리아가 보여주는 믿음을 잊지 않고신앙생활 안에서 짧은 시간 이라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시다.저도 작년에 중국에 가서 집도 없이 사는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는데 잘 안됐습니 다중국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데기회가 되면 말은 안 통하지만 그곳으로 가서 도와 주고 싶습니다.

 


miércoles, 2 de octubre de 2013

유 프란치스코 (Francisco Torres) 신부님과 인터뷰

“젊은이들을 주목하라”



후원회원님께 무엇보다도 감사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도와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고 있어요. 감사하는 마음뿐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그랬듯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앞으로 언제든지 우리가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 항상 있고, 마음이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한국에 있는 동안 50년이 지났는데, 함께 신앙생활 하면서 한국 교회가신자들의 믿음과 신앙을 도와주고 있으니까 한국교회에 감사하고, 우리를 초대해주시고, 도와주는 마음으로 항상 기쁜 마음으로 활동하는 것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우리뿐 아니라 회원들과 같이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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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 멕시코 과달라하라 

▪ 2003.2 부제품(광주대교구)
▪ 2004.1 사제서품(멕시코 과달라하라 성요셉성당) ▪ 2004.5 자양동성당 보좌신부
▪ 2005-2008 금당성당 보좌신부 ▪ 2009 부천카톨릭대 교목과 스페인어 강의
▪ 2009.1-현재 스페인어 공동체 담당신부(한남동국제본당사목)
▪ 2009.2-현재 서울 합정집 원장. 교목 활동 ▪ 현재 서강대학교 교목활동. 스페인어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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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신부와 인터퓨


신학생으로 한국에 오셨을 때 한국에 대한 느낌은?

12살 때부터 소신학교를 다녔고, 본당 신부님을 보면서 나도 자라면 신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여 복사도 했고, 선교사 신부는 나중에 생각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미국에서 열리는 성체대회에 참석하면서 선교사를 하고 싶 다는 마음이 생겨서 과달루페회에 입회(1992년)해서 선교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한국은 신학생 때부터 왔는데, 오기 전에 아시아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요.
지도 신부님과 한국에서 활동하시고 계신 신부님들께 한국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한국에 오고 싶었어요. 한국 사람 너무 좋다고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그 얘기 만 듣고도 오고 싶었어요. 신학교에서는 한국 사람들을 몇 명 알게 되었는데, 좋으신 분들이었습니다.


그동안 사목, 교목활동 하신 곳은?

2004년 5월31일 서품을 받고 자양동성당 보좌신부로 왔는데....... 첫사랑이에요.
자양동에서 새 사제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전남 순천 금당 성당 보좌로 3년반 동안 사목하면서 보람 있었습니다. 광주 신학교 졸업했기 때문에 동기 신부님들도 많았습니다. 교목사목 하기 위해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부천가톨릭대,경희대, 외대,서울대등에서 교목과 스페인어 수업을 했으며, 올해부터는 서강대학교에서 예 수회 신부님들과 함께 교목 활동 시작했습니다.

교목활동은 본당과 같이 미사, 봉사, 교리, 특별한 캠프도 있고, 레지오 담당, 피정 등 학생들과 만남, 학교에서 일어나는 가톨릭의 모든 모임을주관합니다.학생,교수,교직원들을위해서 하는 것이 목표인데, 교목팀으로 사제 4분, 수녀 1분,수사님 2분,신학생,교목하는신자들로 구성되어 본당보다 더 일이 많습니다.

특수사목활동(교목) 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제일 어려운 것은 한국말입니다. 본당에서 하는 것은 전례적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지만, 학교에서는 봉사, 교직원 모임 등 여러 행사가 있어서 한국말이 더 어 렵습니다. 학생, 교수, 교직원들과 하는 미사가 다양해서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본당에는 신자들이 다 있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지만, 교목활동은 사람이 없는 상태에서 시간 내기 때문에 행사나 공동체 할때 스케줄 만들기도 힘들고, 학생들이 자주 바뀌기 때문에 학기마다 계획을 세웁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기 때문에, 사람과 가까이 가는 마음으로 우 리 신앙과 믿음을 서로 나누고, 함께 걸어갈 수 있게, 기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문화, 언어도 다르지만, 항상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여주면서 더 가까이 갔습니다.
신자들의 믿음을 보면서 어떻게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내 안에서 정말 기쁩니다. 제가 부족해도 어려워도 신자들이 신앙생활 하는 것이 보기 좋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앞으로의 신부님 계획과 꼭 하시고 싶은 일은?

교회 안에서 관심이 많이 필요합니다. 학생들 믿음이 약합니다. 관심도 없고 의미도 없어 앞으로 졸업하면 성당 나갈지 모릅니다. 학생들을 초대하고 같이 있어야 하고 시간 많이 내야 합니다. 오라고 하는 것 보다 직접 가서 초대하고, 시간 함께 보내 면서 교수들도, 학교에서 과목 안에서도 종교적으로 과목 몇 개 있으면 도움 될 듯 합니다.

앞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성당에도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제들이 더 가까이 가야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동네에서 지방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어느 나라에나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도 있고, 성당 오는 것이 어 려운 사람도 있으나 우리는 찾으러 가지 않아요. 관심이 많이 없는 것 같아요. 우리끼리만 보고 신자들끼리만.....
교황님께서도 말씀하셨죠. “여기에만 있지 말고 밖에 나가라” 밖에 나가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라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교회가 멀리 가지 않습니다.
우리 남미에서 해방 신학 있잖아요. 그런 교육에 대해서 많이 들었고, 예수님도 마 찬가지예요. 의사 있는 데에는 누가 와요? 아픈 사람이 옵니다. 100마리 양 중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활동해야 합니다. 99마리 말고... 혼 자 있으면 외로우니까요. 한 마리의 양을 찾는 신부가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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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신학교 건립 기금 및 후원회원 모집

광주 양동공소(8월 24일)에서 심고라손 신부님 미사집전으로 순천임원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있었다.


안안토니오 신부님께서 2009년 6월부터 광주 북동 성당 양동공소를 시작하면서 이룩된 공동체로, 마 음은 있어도 미사 참석이 어려운 상인 신자들의 애로를 알고 시작하여, 가족적 분위기에서 조그마한 공간을 최대로 이용하여 전례와 교리를 집행하고 있다.

자양동 성당에서 8월17일 특전미사와 18일 저녁7시 미사까지 6번의 모든 미사중에 있었


다. 7명의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봉사하셨고, 심고라손신부님의 미사집전과 배알베르또 보좌 신부님께서 봉사자들을 격려해 주셨으며, 많은 분들이 동참해주셔서 주님의 은총으로 많은 열매를 맺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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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eves, 22 de agosto de 2013

마요한 신부님 인터뷰


어떤 계기가 되어 외방선교회에 들어가시게 되었나요?
  주일학교 시간 때 이 세상에 아직도 많은 어린이들이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배워서 제가 나중에 선교사가 되어서 꼭 복음을 전하겠다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갈 생각을 갖게 되었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언제 한국에 처음 오셨으며, 신학생 신분으로 광주에서 보낸 추억이 있다면? 
   1977년 4월에 한국에 신학생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과달루페 대신학교에서 수련기를 마치고 한국에 유학을 신청했습니다. 한국말을 일년 반 공부한 후 광주 대건신대에 입학했습니다. 문화 차이, 언어 구사 부족등, 여러 가지 문제로 어려웠습니다만, 신학교 생활은 멕시코 신학교 생활과 비슷했고(기도,공부,작업,운동등) 그 당시에 많은 좋은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래도 너무 답답할때면 도대체 내가 여기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왜 왔을까 생각할 때가 가끔 있었죠. 
  
사제 서품 이후 근무한 곳과 그곳에서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고흥, 자양동, 매곡동 금당, 망운 모두 잊혀지지 않는 선교지였습니다.

자양동성당 보좌신부(1982.4), 전남 고흥성당 주임신부(1983.6)로 도화, 과역공소에도 매주 주일미사 드렸습니다. 매곡동주임(1987)으로 있을 땐 많은 학생들이 있었고 성당건물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자양동 본당신부(1990.6)로 가서 보좌신부도 없이 혼자 사목을 하였는데 나중에는 빈센트회 수녀님들과 열심히 활동을 했습니다. 이 본당은 유치원부터 노인대학까지 있었으며, 구역, 반, 어른들과 청년 성가대 등 정말 다양한 액션 단체가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가끔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기도 하였지만 그 당시에는 젊어서 그런지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사목회원들과 수녀님들의 도움으로 사목을 기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 멕시코로 근무를 명 받으셨으며, 그곳에서 하신일은?
 20년 일한 한국을 떠나 1997년 멕시코 총본부의 메스콤 분야 담당으로 발령받았습니다. 4,5년이면 한국에 다시 오리라 여기고 떠났는데 12년이 걸렸습니다.

금당,망운성당에서 신자들과의 추억이 있으면 말씀 해주세요.
 저는 한국으로 돌아와서 금당성을 맡게 되었습니다.(2009) 공동체도 젊고 신자들도 열심히 하였으며 아주 마음에 들었습니다. 떠날 때 정든 신자들과 헤어지는 것이 너무 슬펐지만 반면에 기뻤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많은 신부님들이 금당성당 공동체가 탄생하고 성장하도록 활동을 열심히 했으니까요.  망운은 큰 공동체는 아니지만 3개 공소가 활발히 움직이고 있고, 130여명의 신자들과 바쁜 중에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희 과달루페회는 그분들을 기억하며 금당성당과 마찬가지로 또 망운성당에서의 선교회 활동을 접을 것입니다. 망운성당에서 일을 끝내면 특수 사목을 공부해서 선교사로서 활동을 계속해야죠. 

유치원 어린이 와 같이 


하느님 미소를 닮은 마요한 신부님


이혜정 글로리아 수녀 (까리따스 본원)

  들판의 곡식과 여러 식물들이 하느님이 주신 자연의 영양분을 받아 하루하루 몰라보게 풍성히 살찌우는 햇볕 따스한 7월에, 문득 태양의 밝은 모습을 닮은 신부님이 내 머리를 스쳐간다.

“수녀님! 지금 밖에 비가 오고 있어요. 사제관에 올라오세요. 맛있는 커피 준비했어요” 순천 금당성당에서 신부님 사목 활동을 도와드리며 생활을 했는데 그때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지금도 나를 흐뭇한 미소를 짓게 합니다.

  신부님을 생각하면 본당에서 항상 교우들과 우리 수녀들을 사랑 가득한 미소와 부드러운 존대 말씨로 맞이하는 모습과 교우들에게는 수직적인 관계가 아닌 수평적인 열린 마음으로 늘 대해 주신 모습, 우리의 기도가 필요한 어려운 교우들을 방문하셔서 두 손을 꼭 잡아주며 기도하시는 모습이 작은 아기예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그리고 신부님의 큰 매력중의 하나는 유모어입니다.  작은 일에도 감동하시며 나오는 잠깐잠깐의 유모어는 주변의 모든 신자들을 까르르 웃게 하고, 행복바이러스가 넘치게 합니다. 
전례의 중심인 미사강론은 늘 깊이 있게 준비하셔서 금당신자들을 영적으로 살찌워주시고, 주일학교 아이들을 “멋진 왕자님”과 “예쁜 공주님”이라고 표현하며 모두를 친구처럼 맞이해주시며, 사탕과 쵸코렛이 가득담긴 신부님 주머니는 항상 아이들이 몰려오게 하고 사랑과 기도가 담긴 작은 이벤트들이 지금도 저에게 진한 라일락향기처럼 생생하게 밀려옵니다.  

 요즘 산책길에 운동장을 바라보면 지난날, 금당성당 앞 공터에서 매주일 오후 신부님과 교우들, 그리고 수녀들이 함께 족구를 하고 음식을 나누었던 행복한 시간들이 기억납니다. 신부님이 사진을 찍어 주시면 제일 멋진 포즈를 취하면서 행복해했던 신자들과 아이들, 주일학교 교사들과 윷놀이를 하며 정성스레 요리해 주셨던 모습들

신부님의 삶을 바라보면서 말씀과 삶이 따로 떨어져있지 않고 항상! 먼저! 몸으로 모범적으로 살으셨던 신부님은 지금도 저에게는 작은 스승이요, 나침반역할을 해 주십니다. 
  성체앞에서 고요히 기도하시는 신부님의 뒷모습은 많은 신자들을 품어 안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모습이고 기도의 원천이 되어주셨습니다. 
 처음과 끝이 항상 같으셨던 멋진 신부님..

  이 시대에 많은 젊은 사제들에게 좋은 표양이 되어주시고, 항상 열정적으로 사목하시는 신부님을 위해 멀리서 기도로써 파이팅입니다.   신부님! 하느님의 축복 안에서 영적 육적으로 건강하시길....

노인대학 어르신들과 생일축하식 
대세 드리는 모습
새신자들과 기념사진



viernes, 19 de julio de 2013

신부님을 떠나 보내며


안 안토니오 신부님과 새신자들과 같이

교구장님의 특별한 배려와 관심 속에 특수사목으로 양동시장 신자들을 위한 양동공소가 신설되었습니다.  공소 첫미사에 3명 참석했던 신자수가 현재는 특전미사와 주일미사 참례수가 70여명이 넘고, 평일미사에는 15~30여명이참례하고 있습니다.  

공소가 이렇게 성장하기까지 노고가 크신 안재윤 안토니오 신부님(과달루페회)을 지난 5월 18일 떠나보내며 아픈 마음을 달래 송별사를 적어봅니다.  맑디맑던 오월 어느날, 날벼락같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스승이자 부모, 형제, 친구 같으셨던 우리 신부님이 떠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한국도 아니고 멕시코 본국으로 가신다니 어쩌면 영영 뵐 수 없을 것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지난 4년 동안을 돌이켜보면 신부님이 남겨놓은 발자취는 영원히 남아있을 것입니다.

비록 신부님이 저희 곁을 떠나시지만 결코 좌절하고 낙담하지 않고, 하느님의 도우심 안에서 신부님께서 헌신적인 사랑과 봉사로 모통이 돌을 세워주신 이토대 위에 튼튼하게 집을 지어 신부님의 노고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항상 인자하고 환한 모습으로 가까이 다가 오셨던 신부님!

저희들은 신부님이 어디에 계시더라도 인자롭고 따스했던 모습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비록 지금 신부님과 이별을 하지만 이별 뒤에는 반드시 또 만남이 있음을 의심치 않으며 다시 만날때까지 항상 주님의 은총속에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안토니오 신부님, 파이팅!!

양동공소(북동본당) 사목회장
 김영태 안셀모



miércoles, 3 de julio de 2013

영적 의사 하이매 신부 (Fr, Jaime Palma)



병원사목은 2012년 2월 18일부터 시작하여 1년 남짓 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병원 수녀님들과 함께 미사 드린 후, 생명이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새로운 날을 시작합니다.

병원에서의 활동은 삶과 죽음의 경계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처럼 죽음이 얼마나 우리 가까이에 있는지 직접 피부로 느끼게 하고, 나이나 종교의 구별없이 직원들과환우들 또 환우   가족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하심을 체험하게 하는 시간입니다.

많은 환우들을 위해 부지런히 뛰어다니는 의사, 간호사 그 외 병원 곳곳에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 병마와 싸우는 고통 속에서도 가족을 걱정하는 환우들...이 모든 이들이 바로 하느님 사랑의 모범이신 그리스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저는 그분들과의 만남을 통해 하느님께 축복을 받습니다.하느님 감사합니다.

하이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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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멕시코 푸에블라 
▪ 사제서품:과달루페 성모님 바실리카 (멕시코시티), 1994.8.13 
▪ 2001.8 한국파견    
▪ 2003.12-2005.4 금당성당 보좌신부  
▪ 2005.5-2008.8 조곡동성당 보좌신부  
▪ 2008.9-2009.9 연수  

▪ 2009.10-2011.10 자양동성당 보좌신부  
▪ 2012.2~ 병원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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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의사 하이매 신부


박규숙 글라라 (순천 성가롤로 병원 간호사)


하이매 신부님에게서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때로는 거룩함의 향기가, 때로는 온유함과 선량함의 향기가, 과묵한 모습과 태도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향기가 난다. 이러한 신부님의 향기는 환우들과 직원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의 파문을 일으킨다.

그러기에 하이매 신부님을 만나 뵐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신부님은 우리가 고백성사를 보고자 하면 언제 어디서나 조건없이 받아 주시는 열려 있는 마음의 ‘O․K 신부님’이시다. 특히 한 달에 한 번 있는 간호사를 위한 미사 날짜가 다가오면 정확하게 기억하셔서 먼저 알려주실 뿐만 아니라, 생일과 축일을 맞이한 간호사들과 직원들을 일일이 챙겨 주신다. 긴장된 일정 안에서 몸과 마음이 지친 우리는 신부님께서 집전하시는 간호사 미사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위로와 평화를 체험하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참석하기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간호사 미사 참석인원과 고해성사를 보고자 하는 간호사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환우들이나, 전체 직원들 안에서도 이런 좋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병동에서의 신부님의 활동도 활기차시다. 수술을 앞둔 환우들에게 다가오셔서 안정된 마음을 갖도록 기도해 주시고, 방문도 거르지 않으신다. 호스피스 병동에서도 환우들이 마음의 평화와 내세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임종할 수 있도록 영적돌봄과 기도에 정성을 쏟으신다. 특히 교우인 환우들에게는 봉성체와 병자성사로써 용기와 힘을 더 해 주시는데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는 보호자들도 신부님의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하신다. 
  
신부님의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들은 우리가 하는 일이 생계를 위한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생명을 존중하고 돌보는 거룩한 직무라는 사명감을 다시 한번 갖게 하는 자극이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부님은 이 병원에서 영적인 의사 선생님 역할을 톡톡히 하시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병원 전체의 크고 작은 신심행사와 신앙교육 등에 있어서도 기획부터 행사 마침까지 담당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적극적인 협조와 조언을 아끼시지 않으신다.
특히 신부님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뛰어나셔서 행사의 효과를 높이는데 큰 몫을 담당한다고 한다.이러한 공적인 일 이외에도 신부님은 참으로 사랑이 많으신 분이심을 느끼게 한다. 어느 날 강론 말씀 중에 “외식을 맛있게 하면서 본부에 계신 할아버지 신부님들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는 말씀에 우리는 숙연해졌다.
이런 하이매 신부님을 우리들은 사랑한다. 그리고 한 공간 안에서 함께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도 행복하고 감사롭기에 이런 고백을 하고 싶다.

 “하이매 신부님, 당신은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이십니다!”  
Dios es Amor 














sábado, 22 de junio de 2013

감사했습니다! 두 분 신부님




안재윤 안토니오 신부님과 유진호 에우제니오 신부님 본국으로 귀국

한국에서 신학생 신분으로 대학을 다니며 선교 활동을 시작했던 두 분 신부님이 한국근무를 마치고 본국으로 발령을 받아 귀국하시게 되었다. 에우제니오 신부님은 이미 멕시코시티에 가셔서 지금은 임지에서 활동하고 계실 것이다.

두 분 신부님의 공통점 이라면 한국을 너무 사랑하셨고, 한국에서 계속 근무를 원하셨다는 점이다. 

1977년 4월 한국 땅을 밟은 이후, 광주의 양동시장 공소 사목을 마지막으로 한국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떠나시는 안 안토니오 신부, 1983년 6월 역시 같은 신분으로 한국 땅을 밟으셨고 자양동 주임신부와 한국지부장을 역임했던 유 에우제니오 신부님이 이들이다. 

이번에는 두 분 신부님의 사목 경험과 한국을 떠나는 감회를 싣는다.


송 아오스딩(순천 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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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을 배웅하며.....
유진호 에우제니오 신부


한국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북한 선교 -        

1983년 6월 28일 한국에 신학생으로 오게 되었고, 올해 1월까지 한국지부장 신부로 근무했으니까 최근 11년 동안 한국에 머물렀네요.

최근 선교회의 관심 지역인 중국과 북한선교를 하고 있는데, 중국에는 이미 조그만 활동을 시작하였고, 북한에는 유진벨 재단(회장 인세반)의 결핵요양소 방문단에 합류하여 갈 수 있었습니다(4월 17일부터 18일간). 너무 힘겹게 생활하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앞으로도 유진벨 재단과 연락하며 다시 방문하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것이 아니라, 순명하는 뜻으로 멕시코 총본부에서 재정 담당으로 근무를 시작합니다.

한국인은 신앙과 관계 없이 모두가 친절하고, 특히 정이 많은 민족임을 느꼈습니다. 이별하기가 참 어려울 정도로 기쁘게 살았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1983년 한국 신학생 생활
 ▪ 1987년 사제서품         
 ▪ 1991년 성소지도신부. 몬테레이 본당 주임신부
 ▪ 1994년7-2001년 LA성바오로성당 주임신부
 ▪ 2002년 9월-2008년 12월 자양동성당 본당신부
 ▪ 2013년1 한국지부장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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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윤 안토니오 신부

양동공소 선교활동을 마치고   

                      
광주의 재래시장인 양동시장을 선교지로 삼은것은 바쁜 상인들한테 신앙생활 더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2009년 5월 1일부터 미사를 시작하여 현재는 신자수가 140여명으로(쉬는교우40여명)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신자들이 얼굴 더 밝게 보이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많이 느꼈으며, 한국 생활 중 특히 기억나는 부분은 양동시장 공소의 하나된 공동체의 모습과, 서강대학교 대학생을 사목활동 할때 그들의 따뜻하고 순진한 모습을 많이 기억할겁니다. 

그리고 보좌 신부로써 부산 사직동과 서원동 성당에서 신자한테 사랑을 받은것도 머릿속에서 좋은 추억 으로 남길 겁니다. 저희 외국 선교사를 잘 받아 주시고, 항상 관심과 협조 많이 해주심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 1954년 멕시코 과달라하라시에서 출생
  • 1982년 사제서품   ▪ 
  • 1990년 성당보좌 신부   
  • 1992년 여수 신기동성당 주임신부
  • 2001년-2009년 한국 지부장 
  • 2009년 6월-2013년 5월 19일 광주양동공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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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ábado, 30 de marzo de 2013

예수님의 부활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아침,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돌무덤처럼 예수님 부활의 기쁨은 닫혀있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 열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생활하면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과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 평화, 인내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우리 주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심코라존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