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달루페회 역사

과달루페 외방선교회역사
Alonso Manuel Escalante 주교님

     1938 년부터 멕시코의 여러 주교들은, 과달루페 성모님을 통하여 스페인 선교사들에게 신앙을 받은 멕시코의 신자들이 그 은혜 보답하기 위하여, 하느님을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선교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느끼기 시작하였다. 물론 이전 스페인 시대부터 그 당시까지 여러 수도회를 통하여 수많은 멕시코 신부와 수사, 수녀들이 선교 지역에서 활동해 왔지만, 공식적으로 나라를 대표하는 선교 단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다. 특히 로마에서 유학하는 신학생들과 신부들이,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 외방선교회가 있듯이 멕시코 천주교회교회도 이제 베푸는 교회로서 외방선교회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아 전국 주교들에게 건의하고 주교들의 각별한 관심을 요청하였다.

   그 때에 마르케스 (Márquez) 대주교는 미란다 (Miranda) 주교와 힘을 모아 월간지인 ‘선교(Missional)’를 만들어 전국적으로 보급하며, 이제 멕시코도 선교 사제를 파견할 때가 되었다는 인식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멕시코가 가난한 나라였고 더구나 박해 시대 (1926-1936)가 지난 지 얼마되지 않아 교회가 안전적이고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국내에서조차 많은 수의 사제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찬성하는 의견이 우세하여 주교회의는 1942년에 과달라하라시에서 제1차 전국선교대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대회에서 외방선교회를 설립하기로 하고 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1947년 푸에블라에서 주교회의가 개최되었고, 체2차 전국 선교대회에서는 멕시코 외방선교회와 그에 필요한 신학교를 설립할 것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였다.

   1948년 3월 11일 교황 비오 11세께서는 교황청 포교성성을 통하여 본회의 신학교 설립을 인준하시고 선교사의 교육을 당분간 메리놀 외방선교회 맡기시면서, 당시 볼리비아의 빤도 (Pando) 대목구 주교이며 멕시코인으로 메리놀 회원인 에스칼란테 (Alonso Manuel Escalante)를 본회의 신학교 학장으로 임명하셨다.

   1949년 10월 7일, 과달루페 대성전에서 멕시코 주교단의 참석 하에 본회의 설립식을 거행하였으며, 열두 명의 여러 교구 신학생들이 회원으로 입회를 하였다. 과달루페 성모 님을 본받아 비 그리스도교 지역에 효과적인 선교사업을 수행하며 성모님의 보호를 받기 위하여 성모님의 이름을 따서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1950년에 ‘알마스(Almas 영혼들)’ 라는 본회의 공식 소식지를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953년 4월 28일에 교황청 포교성성은 본 회의 회칙을 인준하고 교황관할권으로 승격시켰으며 에스칼란테 주교를 초대 총장으로 임명하였다.

   에스칼란테 주교는 일찍이 중국 만주 지역에서 약 10년 동안 활동을 하였기 때문에 아시아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신학생들이 사제품을 받기 시작하자 곧바로 그들을 일본에 선교 사제로 파견하였으며, 1961년 10월 3일에는 한국에, 1965년에는 아프리카 케냐에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그는 1967년 6월 21일, 환갑을 지내기 위하여 한국으로 오던 도중 말라리아에 걸려 홍콩에서 선종하였다. 그 후 1974년 설립 25주년을 맞이하면서 홍콩으로 선교사를 파견하고, 1980년에는 앙골라와 페루로, 1987년에는 브라질로, 1995년에는 쿠바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2000년에는 모잠비케로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형제 본회는 165여 명의 회원이 있는데 그 가운데 90명이 선교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본부에서 신학생 양성과 선교 홍보 그리고 성소 지도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1999년에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그 동안 과달루페 성모님을 통하여 하느님께 받은 모든 은혜에 대해 감사와 찬미를 드리기 위하여 멕시코 주교들과 후원해 주는 은인들과 함께 과달루페 대성전에서 성대한 미사를 봉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