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ércoles, 13 de julio de 2016

하희명 하이매 신부님의 병원 사목 활동








한 달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뜨거운 여름이 시작되는 6월에 모두 건강하시고 예수 성심성월을 잘 보내면 서 주님의 사랑과 기쁨을 많이 받으시기를 빕니다. 6월 예수 성심성월을 시작한 첫 날에 강남 성심 병원에서 열성을 다해 원목 사목을 하고 계시는 하희명 하이 매 신부님 생각이 났습니다. 하이매 신부님을 아시는 분들은 그분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목 활동을 하시는 지 잘 알지만, 그래도 모르시는 후원회원들이 많기 때문에 이번 호에 특별히 현재 사목 중이신 병원의 봉사 자들을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신부님은 2001년에 한국에 오신 후 2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한 다음, 2003 년 순천 금당 본당과 2005년 순천 조곡동 본당에서 보좌신부로 지내다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성경에 관해 유학하신뒤 다시 돌아와 서울의 자양동 본당에서 보좌 신부로 활동하셨습니다. 병원 원목 사목은 전남 순천 의 성 가롤로 병원을 시작으로 2014년부터 지금까지 강남 성심 병원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강남 성심 병원에서 사목에 힘쓰시는 하희명 하이매 신부님과 함께 하시는 수녀님과 협조하는 모든 봉사자 들, 의사, 간호사, 환자와 그들의 가족들을 위하여 기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8월은 여름 휴가 관계로 모든 후원회 월례미사가 없습니다. 후원금 보내주실 곳 보내주시는 정성이 저희 회와 저희가 하는 사목을 이끌어 가는 데 큰 힘이 됩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국민은행 과달루페외방선교회 789401-01-621588 농 협 (재단법인)과달루페..301-0112-3646-11 외환은행 GUADALUPEMI...630-007280-562 •입금 시 <이름+세례명> 또는 <회원번호+이름> 으로 부탁드립니다. •가까운 은행에 가셔서 자동이체 신청을 하시면 더욱 편리합니다. 과달루페 성모 성지 순례 안내 과 달 루 페 성 모 님 의 발 현 지 와 성 화 를 실 제 로 직 접 볼 수 있 는 성 지 순 례 입 니 다 . 일 정 10월 중 10박 11일 일정 (10일 월 출발 21일 금 도착 예정) 과달루페 성모 성지 전역과 멕시코 관광, 미국 서부 관광 포함 비 용 430만원 ( 항 공 , 숙 박 , 여 행 자 보 험 등 기 본 여 행 경 비 일 체 - 개 인 실 비 따 로 지 참 ) 신 청 후 원 회 사 무 실 로 연 락 하 여 신 청 후 예 약 금 5 0 만 원 입 금 ( 취소 시 환불되지 않습니다.) * 비 용 은 인 원 과 출 발 일 에 따 라 일 부 조 정 될 수 있 습 니 다 . * 선 착 순 접 수 로 마 감 됩 니 다 .



miércoles, 4 de febrero de 2015

“제가 할 일이 없어 떠나기로 했습니다.”

2015년 1월호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후원회 소식지 26호

“제가 할 일이 없어 떠나기로 했습니다.”

-50년 한국 근무를 마치고 떠나는 민프란치스코 신부-


2014년 12월 13일 토 순천상사성당에서는 한국 근무 50년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국하시는 민프란치스코 신부의 환송회가 후원회원들을 비롯 평소 가까이 지내시던 교구신부님, 외방선교회 신부님들과 조촐하게 있었다. 
광주대교구장을 역임하셨던 윤공희, 최창무 대주교님, 현교구장이신 김희중 대주교님 등 3분의 대주교님들이 함께 하심으로써 민신부님의 한국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마침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자리가 되었다.
 외방선교회 1기 신학생으로, 1964년에 한국에 입국하셔서 소록도에서 30년과 여러 본당신부를 역임하셨고, 평소 온화한 성품의 신부님은 지부장도 2차례에 걸쳐서 하셨다. 미사와 약력소개, 환송사, 주교님들 환송 말씀, 강길웅신부님의 인연과 섭섭한 얘기, 동영상 상영 순서로 진행 되었으며, 환송식 후 석별의 음식을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다.   



기쁘게 보내드립니다.         송명기 아오스딩(순천지역 후원회 회장) 

 한국의 1960년대 초는 정말 힘든 시기였습니다. 
 이 무렵 머나먼 멕시코 땅에서 ‘만방에 나아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려는 한 젊은 신부의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1963년 11월 멕시코를 출발한 그는 미국에서 잠깐 영어 공부를 마치고 64년 2월 어느 날 미국 화물선에 몸을 싣고 한국을 향합니다.  
당시 무료로 선교사를 실어다주는 미국의 프로그램을 이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공짜 배는 곧장 부산항으로 오지도 않고 일본의 요코하마를 거쳐 다른 항구를 들르더니 뱃머리를 남으로 틀어 오키나와 또 타이완을 거쳐, 다시 일본의 어느 항구를 거쳐 도착한 곳이 부산항, 무려 한달 간의 긴 항해 끝에 도착한 곳이 부산항입니다. 1964년 3월 9일입니다. 
 그리고 부산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여수항에 도착한 청년이 이제 백발이 되어 다시 멕시코로 떠나려 하는 순간입니다. 참으로 긴 여정이었습니다.
서른아홉의 혈기왕성하던 신부가 여든 아홉의 나이로 이제 어쩜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헤어짐의 자리에 있습니다.
지나간 50년간의 세월은 한국의 발전만큼이나 한국천주교회도 발전하였습니다. 그 이면에는 신부님을 비롯한 선교회 신부님들의 헌신적인 선교에 힘입었음을 저희들도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신부님께서는 천형의 땅이라는 소록도 근무를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하셨던 참 사제이셨습니다. 남들은 보기도 꺼려하였던 그분들의 발까지 씻기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움이 많은 곳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갈 길을 가셨던 신부님이셨습니다. 
저 고흥 땅 끝자락 도화성당과 무안땅 지도 공소에서도 당신은 사명을 다하신 모습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신자들에게 빨리 다가가야 하는 관계로 한국말을 차분히 공부하지 못하셨기에 언어적으로 더욱 힘드셨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시고 마지막까지 신자들의 고백성사를 맡으실 정도로 오직 한 길을 걸으셨습니다. 
신부님의 헌신적이며 따뜻한 마음은 그 어떤 유려한 강론보다 더 힘 있게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모습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신앙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어야함을 암묵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분명한 것은 신부님께서 한국에 오지 않으셨다면 한국의 천주교회는 훨씬 더디게 성장하였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것을 알고 있기에 당신이 더 존경스럽습니다.
신부님, 이제 걱정 마시고 떠나셔도 될 정도로 한국의 교회는 역동적이고 어려운 나라의 교회를 도와주는 교회로 성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신부님과 함께 하셨던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한국지부는 이제 저 북녘땅에도 선교에 문을 두드리고 있을 정도로 튼튼한 외방선교회로 자리잡고 있음을 평신도인 저희가 느낄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가십시오. 
신부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수고를 잊지 않으신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리라 믿습니다. 저희 모두는 신부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몇년후가 될지 모르지만 저희들이 멕시코 방문할 때 건강한 모습으로 저희를 멕시코의 이곳저곳으로 안내해주시기 희망해보며 이만 마칩니다. 
자세한 상황은 광주평화방송 홈페이지 ‘기쁜오후 2시’ 다시듣기 12월 16일(화)에서 들을 수 있다.



신부님                                                
이리 인사를 글로 올리려 하는 이 순간에 눈물이 먼저 앞서네요.
저는 조용히 혼자 인사 차 가려 했는데, 촬영까지 한다고 하니 번거로움을 드리네요. 저의 세례 신부님이신 고요셉 신부님께서 본국에 가시는 것도 모르게 떠나셨고, 지금은 병상에 계신다니 맘이 아프네요.
그래서 민신부님께만은 가시기 전에 꼭 인사를 드리어야지 싶었지요.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우리 소록도를 잘 지켜 주시어서.....
신부님께서 땀을 뻘뻘 흘리며 풀 깎고 하시어, 구석구석 신부님 손길 안간 곳이 없는 성당입니다. 원 신부님이 계시어 신부님 소식은 들려 줄 것이기에, 제가 섬을 떠나는 날 까지 기억하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고국에 가시어도 필요한 것 다 채워 주시겠지요.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소록도에서 서 스텔라올림












martes, 3 de febrero de 2015

앙골라 교육에도 한 몫 과달루페외방선교회




 아프리카라면 얼른 떠오르는 것이 ‘다양한 동물’ ‘열악한 교육 환경’ 등인데, 과달루페 신부님들은 아프리카 케냐, 모잠비크, 앙골라 등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번호에는 외방선교회에서 발행하는 ALMAS 잡지에 게재된 루이스신부님 관련의 글을 번역하여 싣습니다. 아프리카 학생 교육에 힘쓰는 신부님은 글과 교육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하는 것이 힘겨운 일이지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알려줍니다. 
 앙골라 교육에 대한 관심은 광주대교구 해남본당의 김양회 요한보스코 신부님께서도 과달루페외방선교회와 협력하여 학교를 세워준 곳이기도 합니다.


               
               앙골라의 교육...
         또 하나의 도전


루이스 알론소 제페스 크루스 신부


 알론소 제페스 신부님께서는 과달루페선교회 신부님들이 앙골라의 재건사업, 특히 교육적인 분야에서 참여하는 것에 대하여 우려의 말씀을 하십니다.
왜냐면 앙골라가 직면한 사회 문제들 중 하나는 나라 전체의 기초 공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느린 속도이지만 매일 통신과 교육과 건강과 같은 기초적인 사회 복지를 재건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는 앙골라에서 일하시는 과달루페선교회 신부님들은 재건을 도와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정부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교육을 중요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보아왔고, 정부를 통한 부패한 교육제도는 연속으로 매우 빠르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저희가 도와줄 방법은 점점 더 물질주의화 되고 비인간적으로 되어가는 사회 안에서 성경 말씀을 따르며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에 능력이 있는 새로운 여성들과 남성들을 발굴하여 교육시키는 것”임을 첫 번째 사명으로 신부님들께서는 앙고라의 교육 분야를 선택했습니다. 
 실제로 저희가 있는 곳에서는 정규 교육 시설(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정보 센터와 언어 교육 방향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것은 수많은 어린이들, 청소년들, 청년들과 소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복음을 전하고 천주교인으로서의 은총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이 고귀하고 감동적인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들과 직면했습니다.

새로운 세대들의 교육을 책임지실 천주교인 선생님들을 찾는 것, 같은 교육자들의 믿음의 방향을 감시하는 것, 우리들의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부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연결망을 만드는 것, 종교 수업에 필요한 자료들을 만드는 것, 동아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시설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는 것과 유능하고 공동체 의식이 있는 정직한 공직자들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앙골라가 우리들의 협조를 필요로 하고, 앙골라의 아이들이 예수님과 성경말씀을 들으며, 더 나은 세상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로 2010년에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세우고 1년 만에 65명의 학생들을 모은(유치원생 두 반과 초등학교 1학년에 한 반)봉고에 있는 산호세 성당이 있습니다. 
모든 시작들처럼 부모님들에게 자신의 아이들의 교육과 안전에 책임을 자각시키는 것은 어려웠으며, 불행하게도 40%의 아이들은 부모님에 의해 버려지고, 맞벌이 때문에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나 삼촌에게 교육받고 있었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들은 우리에게 커다란 난관을 가져왔는데, 예를 들면 아이들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를 왔습니다.
아이가 먹지 않고 배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에, 학교에서의 아침 식사 배식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것은 수업자료와도 연관 지어 말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찰흙, 색연필, 도화지, 풀, 가위와 같은 수업자료들을 살 경제적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사고, 기타 교재들과 교복을 사기 위한 후원금을 받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사랑과 기도로 하고 있습니다.
 앙골라의 아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고, 더 나은 세상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숙이 믿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하실 겁니다.
 우리가 지금 할 일은 헌신하며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모든 후원자들에게 저희들의 미션을 위한 기도와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은 모두가 자신의 삶을 성경을 위해 바치는 것과, 희망의 씨앗을 심는 사람이 되고, 이 세상에 정말 필요한 형제애를 베푸는 것에 대해 항상 환영합니다.
뚜알라 꾸모시! (Tuala Kumoxi : 우리는 함께 있습니다.) 




• 상설고해소 운영▸ 순천 과달루페 본부에서 매주 금, 토요일(오전10시-오후5시) 고해성사

• 병원 사목  활동▸ 순천 메디팜 병원과 평화병원에서 매월 둘째, 넷째주 수․목요일 봉성체.
  관심 있으신 회원님들은 오후 2시까지 순천 본부로 오셔서 함께 봉사를 하셨으면 합니다.
  함께 하면 더욱 의미 있는 봉사가 됩니다. 
  매월 두 차례씩 방문하는 봉성체에는 김환호 알비노, 김경태 유스티노, 배 열 안젤로 소병태 안    드레아 형제님께서 차량봉사를 해주고 계십니다. 

• 멕시코 성지 순례▸ 멕시코 과달루페 성모발현지 성지순례가 1월 16일부터 1월 29일까지 이루    어 졌습니다. 인솔자인 라미로 신부님을 포함한 26명이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LA공항에서 환승    하여 멕시코시티의 과달루페성모 발현지와 뿌에뿔라 등 성지순례와 세계적 휴양지인 유카탄 반    도의 칸쿤에서 옛 마야문명지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기쁨을 맛보고 귀국하였습니다.




순천지역 미사 및 회합 2월 26 (목) 7시 30분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본부
카풀 안내송명기 아오스딩 010-5317-3260

서울지역 미사및 회합 2월 ? (화) 2시  합정동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2호선 합정역 7번 출구에서 합정마트앞 도로 직진하여 동원아파트 뒷편 절두산성지 담 사이길)
“병자방문이나 기도가 필요하신 회원은 언제든지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lunes, 10 de noviembre de 2014

Alberto Puente Colunga 특별한 하느님의 부르심


8천명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는 아름다운 고향에서 저희 부모님과 7남매는 풍족하진 않았지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저는, 일반대학을 졸업한 후,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면서 주말마다 집에 와서 보좌신부님과 함께 주임신부님과 성당일을 도와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마음속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많은 신자분들이 신부님보다는 저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사제가 아닌 저에게도 신부님을 대하듯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특별한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제 서품식을 마치고 (부모님과 7남매)


주님의 뜻에 맞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목자의 삶
그러나, 그때 저는 초등학교 근무를 하면서, 동생들을 경제적으로 뒷바라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신학교에 들어갈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동생이 대학을 졸업할때까지 기다리고, 다른 동생들을 부탁한 후 신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신 분이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에 담고, “내 뜻보다는 주님의 뜻에 맞는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목자의 삶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 신부로 살고 싶었고, 아프리카로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주님은 한국으로 저를 부르셨으며 지금은 행복한 마음으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언어였는데, 제 언어능력의 한계에 대해서 많은 실망을 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제 생각을 자유스럽게 표현할수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제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신자분들과도 의사소통이 힘들어서 심적으로 무척 어려웠습니다.
특히 광주 신학교 때는 언어 때문에 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그때 “걱정하지

마라” 주님께서 이끌어 주신다는 지도 신부님의 격려 말씀과 신학생들의 도움으로 편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저는 새로운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위해 어린학생들의 마음으로 돌아가 공부하면서, 가르쳤던 어린이들 생각이 많이 떠올랐습니다.


신자들안에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선교사 신부는 “만나는 모든 신자들 가운데에서 가족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는 지도신부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항상 신자들안에서 우리 가족의 모습을 느끼기 위해 기도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저는 본당활동을 하면서 신자들과 가깝게 지내는 것이 즐겁고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처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고 삶을 통해 말씀을 실천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모든 곳에서 열매를 맺는 착한 목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
과달루페 외방선교회를 위하여 기도와 후원을 해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과달루페 선교회 모든 신부님들도 여러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viernes, 29 de agosto de 2014

}…너를 선택했으니 꼭 네가 해야 하며…~ 박대민(Fermin Parra Conzalez) 신부

박대민(Fermin Parra Conzalez) 신부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는 고향과 가족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새로운 고향과 가족을 하느님께서 주셨습니다.
이 새로운 고향이 한국이고, 새로운 가족은 우리 과달루페외방선교 후원회 공동체입니다.
앞으로 제가 어디서 사목 활동과 사제 선교활동을 하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저는 1993년부터 예수님을 따르고 있고, 앞으로 죽는 날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봉사하려고 합니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서 반갑고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과달루페 외방 선교 후원회 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AMIGOS PARA SIEMPRE(영원한 친구인) 박대민 Fermin 신부-

▪ 1976년 Mexico Monclova 출생
▪ 2003년 3월 한국 입국
▪ 2004년 서강대학교 한국어 공부
▪ 2006년 부제서품(염주동 성당)
▪ 2006년 2월 금호동 성당 사목 실습
▪ 2007년 6월 사제서품(멕시코)
▪ 2007년 이후 멕시코에서 활동
▪ 2014년 7월 한국 입국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찬미 예수님!
하느님은 사랑이시므로 저는 사랑의 선교사입니다.
어디든지 예수님께서 저를 부르시면, 제가 그곳으로 가서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려 합니다. 지금부터 사랑의 선교사가 되고 싶은 저 페르민이 누구인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박페르민 신부입니다.
저는 멕시코 북쪽에서 태어났고, 고향은 먼클러바(Monclova)입니다.
제 고향은 미국 텍사스 바로 아래에 있고, 멕시코에서 제일 크고 유명한 강철공장이 있습니다. 사막지역이라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가족도 아름다운 사람들인데, 하느님께서는 저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그리고 남동생 3명의 가족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선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7살에 Saltillo 교구 신학교에 들어갔고, 22살에 과달루페외방 선교회에 들어갔으며, 미국에서 영어 공부를 했습니다.
한국에는 2003년 3월21일에 왔는데 아는 사람도 없었고, 한국어를 해야 한국인들하고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너무 힘들었는데, 의사소통이 안 되고, 먹는 음식도 다르고, 친구들도 없고 문화도 달라서 저는 한국인 박대민으로 다시 태어나야 했습니다.
서강대학교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배우면서 한국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 후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서 1년 동안 생활했는데 수업을 제외한 모든 것이 다 좋았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공부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교수님들께서 수업 때 어려운 한자말로 설명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지금 전 한국에서 너무 힘듭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
금호동 성당에서는 좋은 신부님들과 좋은 공동체분들을 만나서 매우 행복했습니다.
특히 주임신부님, 보좌신부님께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지금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본국으로 다시 돌아 갔다가 지난 2014년 7월12일에 한국 선교를 위해 다시 왔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과달루페외방선교 후원회라는 새로운 가족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을 후원회 미사에서 처음 만났을때, 아버님, 어머님, 형님, 누님처럼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어 감사합니다. 여러분들을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그들에게 나의 일을 맡길 수도 있지만, 내가 너를 선택했으니 꼭 네가 해야 하며,
네가 나의 청을 들어 너의 중재와 도움으로, 나의 뜻이 완성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니칸모포우아 59-

이 말씀을 가슴에 두고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평화안에서 박대민 Fermin신부 씀









jueves, 7 de agosto de 2014

그러나 순명하여 2011년 1월 추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리고(Rigoberto Colunga Hernandez) 신부

어느 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신부님께서 아프리카 선교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그때부터 ‘나도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가야지’하고 맘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으로 가서 선교하라는 말씀에 순명하고, 지금은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중국 신학교 기숙사가 완공되어서 새로운 학생들이 생활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    쁘고,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계속 관심과 도움 그리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회원님들의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리고 신부-

      ▪ 1975년 Mexico Rio verde 5남 1녀중 차남 
      ▪ 2004년 한국입국. 어학 공부 후, 광주신학교에서 2년 6개월 수학
      ▪ 2007년 부제서품(광주신학교)
      ▪ 2008년 6월 사제서품(멕시코)  
      ▪ 2009년1월-2010년8월  서울 자양동 성당 보좌신부
      ▪ 2011.1월-현재 중국장춘 어학공부
      ▪ 2012년-현재 길림 대신학교에서 스페인어 강의. 면담. 고해성사

하느님의 부르심
어린 시절 본당에 복사단이 처음으로 생기고, 형과 함께 복사를 서게 되었습니다. 
아주 어렸고 뭐가 뭔지 잘 몰랐지만, 가슴 떨림과 함께 신부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성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소망하던 소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어느 날 과달루페 외방선교회 신부님께서 아프리카 선교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그때부터 ‘나도 언젠가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가야지’하고 맘속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나의 첫사랑 자양동 성당
아프리카 선교가 꿈이었지만, 한국으로 가서 공부하라는 말씀에 순명하였습니다. 한국은 언어도 어렵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광주신학교에서 2년6개월 수학 후 부제품을 받고, 1년 후에는 멕시코에서 사제서품을 받은 후, 보좌 신부로써 처음 부임한 곳이 나의 첫사랑과 같은 자양동 성당이었습니다. 
유대철 어린이 공부방, 스페인어 공부방을 처음으로 만들었고, 탁구대도 설치하여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친교를 나눌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모두들 많이 이용하였고 즐거워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탁구대 덕분에 교우가 아니더라도 웃으면서 먼저 인사하는 청소년, 어린이들이 많이 있어서 더욱 행복했습니다. 
짧았지만 즐겁고 행복했던 첫사랑의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나를 부르는 중국
이제 한국어도 익히고 행복해 할 때 지부장 신부님께서 혹시 중국에 관심있냐고 물으시길래 관심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발령을 내리셨습니다
관심 있다고 말씀은 드렸지만, 사실 저의 마음한편은 가고 싶지 않다는 그런 심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순명하여 2011년 1월 추운 중국으로 향했습니다. 

선교사로서 합법적으로 활동할 수가 없기에 신부신분을 감추고, 오로지 학생신분으로 장춘에서 어학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공부하다보니 중국어도 잘 배우고 다른 일반 학생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이 친구라 생각하고 불쑥 찾아와서 언제 결혼할거냐고 묻기도 했는데, 신부임을 말 못하고 학생신분으로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장춘에서 3시간 걸리는 길림대신학교에서 2012년부터 스페인어 강의와 주일에는 고해성사와 면담 그리고 신학생과 다른 교구 사제들의 지도신부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주일을 거룩히 지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애국교회와 지하교회간의 협력의 중간자로서
중국교회에서 세미나 혹은 단체를 만들어 봉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고, 길림의 애국교회, 지하교회가 서로 무관심하던 관계에서 도움을 주는 관계가 되는데 중간 역할을 하였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은 영하 40도~50도의 추운 날씨에 새벽5시부터 밤11시까지 고해성사를 주었던 일입니다. 좁은 고해실에 앉아 있으면 온 몸이 얼어서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체감온도는 밖의 온도 보다 훨씬 더 내려갔고,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언어가 부족한데도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신자들의 말을 알아들 수 있었던 건 신비일 뿐입니다.
추운 겨울에 일이 없자 신자들은 평일 3대의 미사를 모두 참례하곤 합니다.
무릎을 꿇고 강복받길 원하는 순수한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제 어학공부도 마치고 중국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할 수 있도록 노력중입니다.

후원회원 여러분께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중국 신학생들이 보다 안정되게 생활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지금처럼 계속 관심과 도움 그리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회원님들의 가정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시길.

중국 신학교 건립 지원


  우리의 정성어린 후원금이 어려운 중국 천주교회의 신학교 건립에 보태어 졌습니다. 
  지금까지 3만1천 달러가 지원 되었으며, 앞으로도 1만5천 달러가 더 지원될 것입니다. 

  회원 여러분 감사합니다.

“어느 곳 이나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우 이냐시오(Ignacio Garza Evia Ugarte) 신부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습과 정신으로 활동하고 계신 후원회 여러분들께 진심으로감사의 말씀 드리며, 선교사 신부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 깊이 묵상하고, 성모님의 평화를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 - 이냐시오 신부-



1948Mexico. 10남매중 막내로 출생 ▪ 1972년 광주신학대 졸업
1974년 사제서품 (멕시코) ▪ 1974-1978년 멕시코 소신학교 지도 신부
1978년 한국 재입국. 소록도 성당 주임신부(4개월) 성수동 성당 주임신부
1978-1982년 부산 사직동 성당 주임신부 ▪ 1982-1982년 고흥 성당 주임신부
1983-1987년 멕시코 대신학교 지도신부 ▪ 1987-1991년 광주 쌍촌동 본당 주임신부
1991-1997년 순천 매곡동 성당 주임 신부. 한국 지부장 ▪ 1997-2003년 멕시코 과달루페 부총장
2006-2007년 광주 망운성당 주임 ▪ 2007-2011년 순천 가롤로병원 원목실
2011- 현재 중앙대병원 원목실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과의 만남
제가 선교사 신부의 꿈을 처음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때입니다.
다니고 있던 초등학교에 과달루페외방선교회 신부님들께서 방문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모이게 하신 후, 성소와 선교에 대해서 강론을 해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7세의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강론이 쉽게 귀에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만, 막연히 선교사 신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몸소 실천하며 살고 계시는 신부님들이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소신학교에 보내달라고 부탁하였지만, 버스로 12시간이나 걸리는 과달라하시에 있는 학교까지 어린 저를 보내는것을 걱정하셔서 반대하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해년마다 부모님께 똑같은 부탁을 드렸고, 결국 소신학교에 입학하여 중.고등 과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대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예수회 신학생들이 외국에 나가서 활동한다는 말을 듣고, 저도 공부를 마칠 즈음에 한국 선교활동을 신청하여 선교사로 오게 되었습니다.
가끔씩 ‘하느님이 나를 부르셨을까? 아니면 내 고집으로 신학교에 왔을까?’ 라는 의문을 갖기도 했지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는 주님께서 저를 부르시고, 어느 곳이나 항상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저를 통해서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
멕시코 대신학교 지도 신부로 지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서 부임 받은 광주 쌍촌동 성당은 시설이 열악했습니다. 공소만 있고, 예비자 교리실이나 레지오모임 공간도 없고, 오로지 성당밖에 있는 교리실 한 개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주님께서는 저를 통해서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신자들과 힘을 합하여 성당 재건축 사업이 이루어졌고, 그때의 보람은 잊을수가 없습니다. 차츰, 후임 신부님께서 사제관, 수녀원, 주차장등을 건립하면서 만족할만한 성당으로 거듭났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믿음과 받아들임
저는 지금 병원 원목실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신자들을 통해서 신앙심을 더 굳건하게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임종을 앞둔 말기암 환자인 남편을 정성껏 간호하던 젊은 부인의 모습을 통해서 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굳건한 믿음 안에서 남편의 마지막 순간까지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며, 선종할 수 있도록 기도하던 모습을 보고 사제인 저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는 자매님의 모습을 통해서, 저도 또 한번 배웠습니다.


성모님의 모습과 정신으로 활동하고 계신 후원회 여러분께 감사

저는 앞으로 현재 하고 있는 활동들을 계속하면서, 주님의 도구로써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선교 사명이 끝나는 날에는 가족들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믿음을 지키며, 소임을 마친 선교사들을 주님께서 보살펴 주시리라 믿으며……
마지막으로 과달루페 성모님의 모습과 정신으로 활동하고 계신 후원회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선교사 신부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더 깊이 묵상하고, 성모님의 평화를 가지고 살기 바랍니다.